나해 대림 제3주일(2014.12.14) 오대일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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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스콜라스티카 작성일15-02-11 00:01 조회17,600회본문
나해 대림 제3주일
오늘은 대림 제3주일로 대림초에 세 개의 불이 켜졌습니다.
대림초의 불이 하나씩 늘어감에 따라,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향한 희망도 차츰 밝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대림시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6일까지는 대림시기 첫째 부분이고, 17일부터는 성탄을 일주일 앞두고서 대림시기 둘째 부분이 시작됩니다.
그만큼 가까이 다가온 주님의 성탄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림시기 중에서 유일하게 사제가 자색제의가 아닌 장미색 제의를 입는 날입니다.
사제가 장미색 제의를 입는 날은 일 년에 두 번인데, 오늘 대림 제3주일과 사순 제4주일입니다.
장미색 제의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쁨과 희망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오늘은 “기쁨의 주일”이라고도 하며, 오늘 성서 말씀의 핵심도 바로 기쁨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즉, 오늘 제1독서에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한다.”라는 말씀과, 오늘 제2독서에서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 안에서 얼마나 기쁨을 느낍니까?
혹시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기보다 오히려 세상 것에서 기쁨을 찾지는 않는지 반성해봅시다.
그러나 기쁨의 원천은 주님뿐이십니다.
한편,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신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을 그리스도로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부모인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이 아기를 갖기엔 너무나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났으며, 하느님의 손길이 요한을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어른이 되어서 광야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
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그를 따랐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인기에 편승해서 우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세례자 요한은 오히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며, 다만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라고 겸손되이 말했습니다.
여기서 빛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빛은 모든 것을 밝혀줍니다.
우리는 빛이 있어야 다른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지난 주일 복음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르 1,7-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왔을 때에도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때에도, 요한은 제자들에게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7-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세례자 요한은 너무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 크다.”(루가 7,28)라고 말씀하시며 세례자 요한을 칭찬하셨습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의 바로 앞부분에서는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따라서 요한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태초부터 영원히 계시는 말씀이시며, 말씀은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즉시 이루어지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말은 소리와 함께 내용(의미)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용이 빠진 말은 아무 의미 없는 빈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말의 내용은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는 말에 그리스도가 빠진다면 우리가 하는 말은 아무 의미 없는 빈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말씀이 아니라 소리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은 자기 PR시대에는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부풀리며 과대포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역시 말씀이 아니라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본받아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