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5주일(2015.2.8) 오대일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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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스콜라스티카 작성일15-03-03 22:14 조회15,496회본문
나해 연중 제5주일
새해가 시작된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015년도 한 달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다가오는 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엊그제 서울대교구에서는 사제서품식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25명의 새사제가 탄생하였습니다.
매년 후배들의 사제서품식을 보면서, 저도 10년 전에 서품받았던 때를 떠올리게 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르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도 저 자신에게 얽매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품식 때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셨으니, 친히 그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굳게 믿으며,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오늘 전례는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또한 우리를 고통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욥은 우리가 세상 안에서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은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10명의 자녀들과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는 명망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욥이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많은 자녀와 풍요로운 재산 때문이며, 만약 욥이 가진 것이 모두 사라진다면 하느님을 저버릴 것이라며 하느님께 제의를 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욥에게 손을 대지 않는 조건으로 사탄의 제의를 허락하셨고, 사탄은 그의 모든 자녀들과 재산까지도 날려버렸지만, 욥은 끝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사탄은 다시금 하느님께 제안을 해서, 이번에는 욥의 몸에 부스럼을 만들었지만 역시 욥은 끝까지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사탄의 이러한 유혹에 이어서 이제는 욥의 친구들이 욥을 찾아와 “상선벌악”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즉, 욥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욥의 신앙을 비웃으면서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바로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부정하며, 자신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이런 가혹한 벌을 부당하게 내리시는 분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욥은 세상 모든 것이 “상선벌악”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는 이 고통의 원인에 이에 대해 하느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세상의 이치를 부족한 인간이 다 깨우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고, 욥은 자신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욥을 이전보다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고통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고통이란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겪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죽음의 권세를 꺾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지, 죽음이나 고통을 없애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당신 몸소 고통을 겪으시며, 고통을 겪는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고통을 없애지 않으시는 걸까요?
그것은 고통이 우리 삶의 현실이며,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분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아들일 때, 물론 고통스런 상황은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어려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되고, 그 고통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고통도, 기쁨도, 모두 우리 삶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지 않다면 고통도 갈등도 역경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스런 것은 참으로 인간적이다”라는 진리를 인정하고, 고통의 의미를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힘겨운 고통의 자리에서 주님의 현존을 느낀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매달리는 모습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러한 신앙인의 자세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욱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고통 속에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욥이 받은 고통 뒤에 하느님께서 더 큰 축복을 베풀어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넘치는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 복음에도 잘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고생하는 시몬의 장모를 비롯하여 병든 이들을 모두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이들에게서 마귀들을 모두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을 때, 예수님은 다른 곳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사람들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주변에 고통을 당하는 이웃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입니다.
교황청에서는 올해부터 2월 8일인 오늘을 세계 인신매매를 반대하는 기도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2월 8일은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 동정 기념일입니다.
성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태어나 9살에 아랍 노예상에게 납치되어 노예생활을 하다가, 이탈리아 공사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14살에 베니스의 카노사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2000년에 시성되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녀의 축일에 세계 인신매매를 반대하는 기도의 날을 거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교황청의 턱슨 추기경은 지난 2월 3일의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강제로 노예살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침묵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요세피나 바키타 성녀는 본보기가 되는 희망의 증인입니다.
피해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성녀의 생애만큼 힘을 주는 것이 없기에 우리의 노력을 그분의 전구에 맡겨드립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어느 한 공동체나 국가의 권한을 넘어서는 세계적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을 권유하십니다.
이러한 현상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이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규모의 관심과 기도를 동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제고하여 이 악의 가장 깊은 근원까지 파고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최대한 멀리까지 퍼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관심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기도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일치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노예살이와 인신매매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하느님, 속임을 당하여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끌려가
성적 착취와 강제 노동과 장기 적출의 대상이 되는
어린이와 어른들의 소식을 들으면, 저희의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납니다.
위협과 기만과 폭력으로 그들의 존엄과 인권이 무시당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 현대판 노예살이의 악행에 맞서 외치며
바키타 성녀와 함께 노예살이의 종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몸과 마음과 정신에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할 지혜와 용기를 저희에게 주시어
이 형제자매들을 따뜻하고 좋은 사랑으로 채워주시려는
하느님의 약속을 우리가 실천하도록 하여 주소서.
착취자들을 빈손으로 내쫓아 주시어
이 사악함을 회개하도록 하시며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주신 자유를
저희 모두가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