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나해 대림 제2주일(12.06)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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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스콜라스티카 작성일20-12-06 13:22 조회8,233회본문
* 대림 제 2주일 나해
“기다림의 사람, 요한”
성탄을 앞두고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를 통과해야만 우리는 예수님을 합당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삶 자체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삶이었고, 예수님 오시는 준비를 가장 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자 요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의 삶에 동참하면 우리도 진정한 대림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세례자 요한이 '일상을 떠나 있던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상을 떠난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중요한 준비입니다. 자신이 파묻혀 지내는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흐르는 강물에서 헤엄쳐 나와 강둑에 앉아, 강물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일상을 떠난다는 것은 꼭 물리적으로, 공간적으로 떠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세례자 요한의 '고독'입니다. 칠흑같이 검은 밤, 풀벌레와 들짐승의 소리를 들으며 잠들어야 했을 그의 고독을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적인 위로와 인간적인 즐거움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절대고독에 몸부림치며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고,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 어떤 채울 수 없는 고독을 느끼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만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다음은 세례자 요한의 '배고픔'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메뚜기를 씹으며, 들꿀을 핥아 먹으며 불쌍한 육체 덩어리의 한계를 알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원초적인 고통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알았기에 그는, 나누지 않고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족속이라고 꾸짖을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머리로는 배고픔을 모릅니다. 육체는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대자연 속에 육체를 던져보면 인간 생명과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열립니다.
세례자 요한은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삶을 고쳐보려고 시도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고,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촉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한 의지가 있어야 자기 삶을 고칠 수 있고, 목숨 버릴 용기가 있어야 사회 부조리와 싸울 수 있으며, 열정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회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자신과 사회와 이웃에 대해 타협을 모르는 도전자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멋진 점은 그의 '겸손'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모여와 머리 숙여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그에게 혹시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잘라 대답합니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다 못해, 사람이 아니라 ‘소리’가 되기를 바랐던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한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닦아라.” 이 외마디 소리에, 세례자 요한의 고독과 배고픔과 도전의 나날들이 다 담겨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세례자 요한은 소리가 되어 바람처럼 사라졌지만 예수님을 맞이하려는 우리 마음 안에 그 뜨거운 소리 아직도 우렁차게 울립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잘 닦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