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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다해 사순 제4주일(03.27)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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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3-27 15:23 조회4,714회

본문

* 사순 제 4주일 다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여러분은 방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작은아들, 큰아들, 그리고 아버지. 작은아들은 죄를 지은 죄인의 대표선수, 큰아들은 죄를 짓지 않은 죄인의 대표선수, 아버지는 사랑과 용서의 대표선수입니다. 한 사람씩 그 면모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작은아들입니다. 그는 기존 현실에 대해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겠다고 집을 떠납니다.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용기입니다. 사실, 함께 사는 깐깐한 형 때문에 집에 있을 분위기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작은아들은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했고, 죄도 확실하게 범함으로써 자신을 바로 알고, 아버지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뜨거운 마음을 찾은 것은 복된 죄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죄와 고통을 통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 그리고 자신이 누렸던 하느님의 은총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은 참 행복을 찾았습니다. 작은아들은 위대합니다. 하느님께 마지막 희망을 두고 죄에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간 회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 그의 겸손은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다음은 큰아들입니다. 큰아들은 얼핏 보기에 성실한 사람 같지만,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늘 아버지 가까이에 있었지만,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바로 옆에서 누리는 자신의 행복도 깨닫지 못하고 생활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믿고 따른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마지못해 아버지를 섬긴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불리하게 되자 지난날 자신의 성실함을 후회하고 물질적인 배상을 요구합니다. 감히 아버지께 분노하고 신경질적으로 따집니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세상의 질서를 망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했고, 그것이 은총이라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이 없었기에 사랑도 없고, 이해할 능력도 없고, 동정심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죄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없었고, 냉정했습니다. 늘 욕심이 지나치고, 질투심이 많아서, 남이 잘될 때 절대 함께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순간에, 사랑이 아니라 이익만을 따짐으로써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습니다. 사실, 그는 큰 죄를 지을 용기도 없는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작은 죄들이 모여서 큰 죄가 되어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죄를 알았다 해도 회개할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를 배반할 사람입니다. 거래의 대상으로서 가치가 없어지면 아버지를 떠날 사람이고, 사실 정말로 떠날 준비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정말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자비롭게 당신 재산을 나눠주십니다. 죄를 지을지도 모르는 작은아들을 말리지 않고 그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그것은 소중한 깨달음을 주시기 위한 값진 모험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워하면서, 죄를 지은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기다리십니다. 결국, 저 멀리 작은아들이 나타나자 달려가 감싸 안아주십니다. 혹시, 죄를 지은 아들이 마을 사람들 돌에 맞아 죽을까 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죄를 묻지 않고, 오직 돌아온 것만을 기뻐하십니다. 재기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주십니다. 죄를 지었기에 스스로 아파했을 것을, 고생했을 것을 다 헤아리시고, 측은한 마음으로 사랑해주십니다. 감히 아버지를 꾸짖다시피 하는 큰아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시고, 온유하게 타이르십니다. ‘내 것이 모두 네 것이다.’ 그분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분이시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라시는 대가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식의 사랑과 행복, 그리고 평화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께서 죄인을 벌해주시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혹시 큰아들처럼 하느님 아버지 집에는 살고 있지만, 하느님을 잃어버린 미아(迷兒)가 아닌지 돌아봅시다. 오늘의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시고, 작은아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큰아들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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