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다해 부활 제6주일(05.22)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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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5-22 15:40 조회4,424회본문
부활 제6주일 – 사랑과 평화
제가 일하는 롯본기 성당에는 “AA Meet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Alcoholics Anonymous, 우리 말로 해석하면 “익명의 알콜중독자들”인데 쉽게 말하면 “단주 모임”입니다. 미국에서는 꽤 잘 알려진 모임으로 그만큼 알콜 중독이 사회적 문제이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은 매일 밤 정해진 시각에 모이는데 종교,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콜 중독자들은 밤이 되고, 외롭고, 배가 고프고, 술이 보이면 술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기 때문에 알콜 중독이라는 습관적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언제라도 마련된 모임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점은 어떤 사람의 경우 수년 혹은 수십년간 정기적으로 이 모임에 참석하여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유혹과 충동에 굴복하지 않도록 자신을 단련시킨다고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혹시 AA 모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곳 도쿄에는 한국어로 하는 모임이 없습니다. 혹시 영어가 가능하시고 알콜의 어려움이 있으신 분은 매일 밤 7시 저희 성당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은 유다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새로이 크리스챤의 삶을 시작한 크리스챤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위협합니다. 이에 유대인 출신이면서 크리스챤이 된 사람들은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크리스챤이 되었지만 원래 유대인이기에 모세의 율법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법을 지켜야 하는가? 크리스챤의 법을 지켜야 하는가? 그렇게 갈등하는 크리스챤들에게 사도들과 원로들은 사람을 보내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모세의 율법 중에 필수적인 것만 지키고 나머지는 크리스챤의 법을 지키십시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초대 교회가 어떤 법을 지켜야 하는 지에 관해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현대의 우리들도 같은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의 삶을 시작한 우리는 현세의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부와 명성, 권력과 명예, 자존심과 명분, 욕망과 현실 등등.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원리와 가톨릭 신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원리는 매순간, 사사건건 부딪히고 충돌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왜 가톨릭 신자가 되어 가지고 이런 고민과 갈등을 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런거 지키지 않아도 잘 만 살아가는데. 차라리 가톨릭 신자가 되지 말걸.
마치 우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갈등하고 방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결론은 분명합니다. 과감히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으면 됩니다. AA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처럼 수년, 수십년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를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정작 과거를 청산하고 살아가는 데는 마치 알콜의 유혹처럼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톨릭 신자로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세에 굴복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성령의 보살핌 속에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5주간 계속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부활을 마감하고 다음주는 예수님 승천을 기념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전례는 부활 이야기를 사랑, 평화, 성령으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 삶의 기원이자 핵심인 예수님 부활의 결말을 사랑, 평화, 성령이라는 세 단어로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 단어는 앞으로 부활이 주는 여러 의미들을 현실의 삶 속에서 구현하고 실천해야 할 크리스챤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실천하여 어떤 삶을 구현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여 평화로운 삶을 살아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삶 속에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고 힘을 북돋아 주실 것이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단언합니다. 부활의 이야기를 사랑, 평화, 성령에 관한 이야기로 마감하는 이유는 바로 부활의 원인과 결과가 사랑과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시고 부활시킨 그 모든 과정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크리스챤들은 무엇보다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와 함께 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신 하느님이십니다.
복잡한 얘기를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 신앙의 근원인 부활의 의미를 실천하며 살아가려고 하지만 현세의 많은 유혹과 갈등은 자주 우리의 의지를 꺾습니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전보다 더 충실히 살아가는 방법은 꾸준히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며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성령께서 늘 함께 해 주시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런 크리스챤의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