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11.20)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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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11-20 15:38 조회4,133회본문
* 그리스도왕 대축일 다해
“천국을 훔친 도둑”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도둑이 있습니다. 남의 돈을 훔치는 도둑,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 남의 명예를 훔치는 도둑, 남의 시간을 훔치는 도둑, 남의 생명을 훔치는 도둑....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한 도둑만큼 귀한 것을 훔친 도둑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명의 도둑이 나오는데, 예수님 오른쪽에 있었다고 우도(右盜)라고 불리는 그 도둑은 죽기 바로 직전에 천국 낙원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면서 못된 짓을 많이 하여 사형까지 당하게 되었지만, 막판에 운 좋게 예수님을 만나서 가장 확실하게 구원받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 도둑은 똑같은 현장에 있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우도(右盜)가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자기의 죄를 인정했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도 무척 괴로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위로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이며, 회개가 바로 천국 낙원으로 들어가는 열쇠인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들이 새롭게 살아가는 사랑의 삶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삶을 말합니다.
TV에서 동물들의 생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제 머리를 떠나지 않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넓은 초원에 여러 마리의 얼룩말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을 때, 한 마리의 사자가 몰래몰래 그 옆으로 다가옵니다. 기회를 살피던 사자는 드디어 얼룩말을 향해 질주하고, 혼비백산 도망치던 얼룩말 중에 운이 나쁜 한 마리의 얼룩말이 붙잡힙니다. 사자는 그 목을 물고 늘어지고 얼룩말은 결국 쓰러집니다. 그때 다른 사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는 그 얼룩말을 마구 뜯어먹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픈데, 그것은 처량하게 죽어가는 그 얼룩말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마음이 아픈 이유는 그 뒤로 보이는 장면 때문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풀을 뜯던 동료가 사자들에게 찢겨 먹히고 있는데, 다른 얼룩말들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다시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는 장면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짐승보다 낫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이겨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비정한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어느 날 실제로 자살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소처럼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마치 사자에게 먹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자기 배를 채우고 있던 그 얼룩말들을 닮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조금 더 가지고 살아갑시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갑시다. 고통 그 자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도 내가 고통받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랍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이웃의 고통에 좀 더 관심을 가집시다. 천국 낙원은, 오아시스가 있고 갖은 과일나무가 있고 아무런 걱정거리도 없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진정한 천국은, 고통 속에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남의 고통을 위로할 줄 아는 그런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즉 고통이 없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 사랑 나라의 왕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우리는 그 나라 백성입니다. 오직 사랑을 위해 고통받고 죽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사랑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며, 고통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진 맙시다. 왜냐하면, 고통 없는 사랑이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