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30일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저는 안동교구 소속 공검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우분들은 대부분 과수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저희 성당 뒤편에도 넓은 과수밭이 있어 저도 교우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과수 농사를 하시는 분들이셔서 소를 키우는 집이 몇 없는데, 이번 강론을 준비하면서 소를 키우시는 분께 "소도 주인 목소리를 알아듣나"는 질문을 해 봤습니다. 그러자 교우분은 당연히 알아듣는다고 답하셨습니다. 주인이 가면 소가 반가워하는 게 보인다고 합니다. 다만 너무나 당연하지만 소가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위해선 소와 자주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을 소용없는 일을 하는 경우를 두고 사용합니다. 그런데 소도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하니 소귀에 경을 읽는 게 마냥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듭니다. 계속해서 경을 읽으면 그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소가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오늘 복음에 나오듯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처음부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진 못했을 겁니다. 다만 목자가 계속해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양들은 어느 순간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을 겁니다.
우리는 흔히 외국말을 배울 때 '귀가 트인다'라는 말을 합니다. 귀가 트일 때 상대방의 말이 단순히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뜻을 담은 대화가 됩니다. 여기 계신 교우분들도 모두 이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귀가 트이기 위해 필요한 건 단 하나입니다. 계속 듣는 것입니다. 안 들린다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대화를 하지 않으면 귀가 트이지 않습니다. 안 들리더라도 계속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많이 들어야 귀가 열리고 상대방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을 반대로 해보면, 내가 뜻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말을 걸어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귀가 열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알아들을 때까지 우리를 부르신 주님 덕분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소귀에 경을 읽는 사람처럼 우리가 알아들을 때까지 우리를 부르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묵상하는 성소주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 해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부르심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가 당신께 다가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다른 소리를 듣느라 그분 목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여러 이유로 일부러 귀를 막아버려도 그분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 지치지 않으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지치지 않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의 뒤를 따르는 양들이 됩니다. 지치지 않고 사랑할 때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려 할 때,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사랑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면 잃을 것도 많고 바보가 되는 듯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다 어려움을 만나 길을 잃었을 때,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마음에 깊이 새겨봅시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힘을 줄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목자를 따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