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해 연중 제23주일(09.10) 고찬근 루카 신부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09-10 16:39 조회3,338회본문
* 연중 제 23주일 가해
“세상에 열린 공동체”
여러분은 사람 많은 대중식당에서도 거침없이 십자 성호를 긋고 식사하십니까? 아니면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잽싸게 해치운다든지, 옆구리에다 몰래 십자표를 긋고 식사하지는 않으십니까?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간단한 행위지만 그 안에 참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해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이웃사랑을 위해 몸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이런 뜻이 담겨있는 것이 십자 성호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 이상, 우리는 언제나 대중 앞에서 신앙 공동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모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을 보고 예수님을 평가하고 그 종교를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의 시작은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우리들의 역할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님처럼 헌신적이고 완전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속한 신앙 공동체의 정신과 혼을 바로 알고, 그것을 삶 속에서 구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 공동체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머리이신 예수님의 손과 발입니다. 손과 발은 머리의 뜻에 의해 움직입니다.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에 의해 손과 발인 우리가 수행해야 할 사명이 세 가지 있습니다. 이 사명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에도 똑같이 주어지는 사명입니다.
첫째는 예언(豫言)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무엇이 진리인지를 깨달아 알고, 깨달은 바를 세상에 알리는 사명입니다. 참된 이치가 무엇인지,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오직 하느님만이 진리이고, 하느님만이 참된 가치이며, 하느님만이 인생의 목적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바로 진리이며, 사랑이 하느님의 뜻이고, 사랑이 인생의 목적임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둘째는 성화(聖化) 사명입니다. 온갖 저속한 것들도 개인주의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되는 이 시대에, 부패되는 세상과 파괴되는 사람들을 ‘착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구해내는 일입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우리에게 베푸신 그 착한 마음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일이 바로 이 성화 사명입니다. 늘 측은한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다음은 봉사(奉仕) 사명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세상에 속해있으며 세상을 위해 봉사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에 봉사하지 않는 공동체는 예수님의 뜻과 반대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으니 꼭 구원받는다. 우리는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라는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하느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봉사할 때는 꾸준한 노력과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꾸준히 봉사할 때 세상과 이웃은 변화됩니다. 누가 보아주어서도 아니고, 상을 바라서도 아니며, 상처를 입고 무시를 당할지라도 말없이 봉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렇듯 우리 신앙 공동체는 사랑의 하느님을 알고,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성실히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전에 우리는 하느님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주고, 하느님의 뜻을 위해 봉사하는 행복을 전해주었습니다. 혼자서는 힘든 일들을 공동체의 힘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 공동체를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신앙 공동체가 화합하여 하나 되고, 서로 격려하며, 활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일미사만 참례하는 ‘주일 신자’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모임에 가입하여 함께 기도하고, 언제 어디서나 활동하고 봉사하는 ‘전천후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사는 이 시대가, 개인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날로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이웃과 함께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만 열심히 기도하여 구원받으면 그만이다는 이기적 집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 몸 바치며, 이웃사랑을 사심 없이 실천하여 삶의 의미를 찾는 ‘세상에 열린 공동체’입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거는 기대도 크고, 우리가 할 일도 많고, 우리의 사명과 책임도 어느 때보다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