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나해 주님 성탄 대축일(12.25) 고찬근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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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12-25 20:49 조회3,003회본문
* 성탄 대축일 나해
“함께하러 오시는 예수님, 임마누엘”
천국은 기다림도 눈물도 슬픔도 욕심도 절망도 없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입니다. 참으로 평화로운 하느님의 품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천국에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모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가고 싶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을 못합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천국이 싫은 겁니까? 지금이 좋은 겁니까? 결단과 확신 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오시고, 그분을 모시고 그분의 영향권 안에 산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섭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기쁘십니까? 혹시 두려우십니까? 이번 성탄도 그저 그렇습니까? 다 괜찮습니다. 오늘이 시작입니다. 아기 예수님과 함께 걸음마를 배우며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데리고 하느님 나라로 당장 데려가는 것도 아니니 두려워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의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의 강생 목적은, 비참한 우리 인간의 삶을 부정하고,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탈출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비참한 인생에 함께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비참한 인간의 삶에 함께하시어, 우리 인생을 비참하지 않게 만들어주시는 것이 강생의 참된 목적입니다. 원래는 비참하지 않았던, 하느님이 만드신 보기 좋은 세상을 되찾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와 함께하시려는 임마누엘 하느님과 함께하겠다는 결단만 내리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맡기면 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창조되고, 자유의지라는 귀한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에 살기 시작했지만, 그 무한한 자유의지가 아주 옹졸한 이기주의로 변하여, 비정하고 각박한 세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모습이 측은하여 재창조(再創造)의 차원에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이번에는 확실하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바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가르쳐주는 교과서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순수함부터 시작하여, 약자와 죄인에게 베푸는 아버지 같은 사랑과 용서의 넓은 마음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뒤집어엎는 청년 예수의 정의와 용기를, 언제 어디서든 깨어 기도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을, 그래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내신 예수님의 일생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예수님은 새로움을 가르치러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안의 가능성을 깨우시러 오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원래 착합니다. 우리는 따뜻합니다. 우리는 고상합니다. 우리는 용감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느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작 2 기가(giga)짜리 하드웨어(hardware)가 아닙니다. 우리는 수천, 수만 기가 아니 무한한 용량의 소프트웨어(software)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예수님께, 비참한 우리 인생에서 구해달라고 청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닮은 본연의 우리로 돌아가, 무한한 가능성의 아름다움을 살게 해달라고 청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