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다해 부활 제2주일(4.27) 강신구 리치미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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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5-04-26 10:13 조회77회본문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요한 20, 19-31)
+ 찬미 예수님
부활 제2주일이면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특별히 이번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과 함께 더욱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교황님은 자비의 교황이라고 불리시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이 재위하시면서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교황님 메시지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것은 자비에 대한 복음적 호소였습니다. 이는 하느님께 의지하며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친밀함과 애틋한 사랑에 대한 호소이며, 자비는 “숨 쉬는 공기”와 같아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며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어렵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들을 진정으로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또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들이 더 커져가기만 합니다.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자비’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습니다. 라틴어 단어 ‘미세리코르디아‘의 본래적 의미는, '마음 cor을 가난한 이들miseri에게 둠',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마음을 지님‘에 있다고 합니다. 물론 하느님의 자비를 이 단어 안에 다 포함시킬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에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의미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우리들은 가엾은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며 가엾은 마음이 드셨던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알려주시고자 많은 가르침과 기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아는 마음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하느님께서 과연 우리들을 받아주실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때도 많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머리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과오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우리들은 나의 부끄러운 모습보다는 세상에 보여질 우리들의 화려한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어려움의 기준을 인간의 욕심과 결부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 못해 겪는 어려움은 ‘자비’가 필요한 세상을 만들 뿐입니다. 나에게만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아니라 정의로움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실제 지금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입니다.
자비의 사도라 불리는 파우스티나 성녀는 “하느님 자비를 얻기 위해선 하느님께서 자신의 죄와 벌을 완전히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진정한 신뢰가 있어야 참된 자유와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고, 하느님의 자비에 기인한 우리들의 자비의 실천 또한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적으로 우리를 받아주실 하느님의 자비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돌아온 작은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못난 모습을 하느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결코 우리를 나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야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가 당신을 믿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가치가 세상의 금방 사라져버리는 기쁨과는 달리 사라지지 않을 기쁨을 주님으로부터 누릴 수 있는 은총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주일을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에 대한 가르침을 나누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바티칸에 있는 성녀 안나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한 첫 번째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난받아 마땅할까요! 그것이 정의로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용서하십니다! 어떻게 용서하실까요? 바로 자비를 통해 용서하십니다. 자비가 죄를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용서가 실제로 죄를 없애줍니다. 하지만 자비는 죄의 사함을 넘어섭니다. 자비는 하늘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며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지만, 아침에 태양이 뜨면 그 강한 빛으로 인해 별들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도 그러합니다. 하느님은 교령으로 용서하지 않으시고, 어루만짐으로 용서하시는 크나큰 사랑이자 온유함의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