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다해 연중 제1주간 목요일(1.16) 이노쿠마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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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5-01-17 09:23 조회23회본문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찬미 예수님!
요즘은 아주 편리한 세상이 돼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우리는 여러가지 모르는 것을 찾아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중에 성서 말씀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특히 성서를 원문으로 읽어보면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원래의 의미는 이런 의미다'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직역된 문장을 읽어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세상이랑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필사적으로 자기 질병을 치유해 주시기를 원하고 호소하는 나병 환자를 만나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라고 돼 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배가 터질 만큼 아파가지고”가 됩니다.
성서에서는 “배”는 사람의 감정을 담당하는 기능을 가리키는 곳이고, 예수님의 배가 즉 예수님의 감정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움직이고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짧은 구절로 표현돼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당시 나병 환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되고 죽을 때까지 격리 생활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이 필사적인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가 호소했다는 것 자체가 율법 위반인데, 그 것이 예수님의 배를 심하게 자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였으니까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이라면 불쾌감을 느껴 절대 만지지 못하는 나병 환자를 일부러 만져서 치유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나병 환자는 자기 소원을 예수님께 직접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원문에서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당신이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돌린 표현을 한 것입니다.
“저를 치유해 주십시오!” 아니면 “살려주십시오!”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돌린 표현으로 말씀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원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원한다!’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디까지나 이 나병 환자의 돌려 말한 소원대로 응답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깊은 배려가 있습니다.
오늘 이 치유의 기적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병 환자가 필사적이었지만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씀 드리기 어려운 상태, 돌린 표현밖에 할 수 없는 너무 불쌍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
그런 나병 환자를 만나 예수님께서는 '배가 터질 만큼 아파가지고' 거리낌없이, 만지셔서 결국 치유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참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그렇게 안 합니다.
반대로 그런 내 마음을 무시하는 듯 조용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사는 게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다가가 용서해 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삶을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도 그런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지금 필요한 '용기와 힘과 슬기'를 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잠시 묵상하고 미사를 계속합시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