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연중 제30주일(10.27)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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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10-27 14:53 조회325회본문
* 연중 제 30주일 나해
“자존심과 체면”
언젠가 유행했던 입 큰 개구리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입이 큰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어떤 개구리가 동네 목욕탕엘 갔습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면서 악어에게 인사했습니다. “아안녕 하세요?” 악어가 더 큰 입을 벌리면서 인사를 받았습니다. “안녕, 입 작은 개구리야.” 개구리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는 목욕탕을 나와 성형외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입을 최대한으로 크게 만드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수술받은 개구리는 다시 목욕탕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더 커진 입을 한껏 벌리면서 인사했습니다. “아아아안녕 하세요?” 그런데 이번에 인사를 받은 동물은 하마였습니다. 하마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안녕, 입 작은 개구리야.” 개구리는 너무나 화가 나서 목욕탕을 뛰쳐나와 다시 그 성형외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더 이상은 어렵다고 하는데도 개구리는 의사 선생님을 졸랐습니다. 더 크게 하면 하루밖에 살 수 없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렸지만, 그 개구리는 하루를 살아도 좋으니 더 크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입을 목 뒷덜미까지 찢어서 단 하루밖에 살 수 없는 상태가 된 그 개구리는 목욕탕 안에서 모두를 놀래 줄 생각으로 마스크를 하고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목욕탕 문 앞에 도착한 그 개구리는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목욕탕 문에 ‘오늘은 정기휴일’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이들을 교육할 때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미국 사람들은 남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가르치는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밖에 나가서 절대로 남한테 기죽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자존심과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그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당한 일이 많습니다. 수염만 쓰다듬고 있다가 나라까지 빼앗긴 적도 있고, 요즘도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게 밑지는 장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함성 속에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는데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자존심과 체면을 너무 내세우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좋지 않은 상황임을 알아도 그것을 고치지 못합니다.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존심 때문에 서로 부딪쳐서 결론에 도달하지도 못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사람은 사람들의 경멸과 꾸지람을 받아서 자존심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지만, 자신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소리를 질러가며 예수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그는 더 이상 자존심이나 체면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고,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으며, 예수님밖에 자기를 구원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았기에 결국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 또한 자존심이나 체면 같은 것을 다 버리고 겸손으로 세상 구원이라는 대업을 이루신 분입니다. 나자렛 촌구석 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받으시고, 베엘제불의 힘을 빌린 사기꾼이라는 모함도 받으시고,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난도 받으시고, 잘 곳이 없어 배 위에 뱃고물을 베고 주무시는 생활에, 심지어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인데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셨지만. 그 모든 오해와 수모를 다 받아내시고 구원 사업을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존심의 자리에 우리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득 채우셨던 분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존심은 일을 그르치고, 겸손은 일을 해냅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남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남의 발을 닦아주지 못합니까? 혹시 자존심 때문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