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연중 제28주일(10.13)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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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10-13 15:30 조회767회본문
* 연중 제 28주일 나해
“한 가지 부족한 것”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 세상을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삶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목적으로 삼은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계명을 지켰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남을 속이지 말라.
어느 날 밤 그 사람은 혼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나는 올바르게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이 많은 재산도 모았고 이만한 지위도 얻었다. 그런데, 이것으로 과연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충분할까?” 우리도 가끔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 영세 받고, 주일미사 꼭꼭 참례하고, 무엇 무엇을 하고 무엇 무엇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것이 가톨릭 신자 삶의 전부일까?”
어쩌면 오늘 복음의 그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님한테 달려와 무릎을 꿇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를 쳐다보십니다. 예수님께는 벌거벗은 그의 모습, 그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의 자만심, 소유욕, 재물에 대한 집착... 그러나 그를 보시는 예수님의 눈빛은 따스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의 숨은 노력과 영생에 대한 갈증을 아시고 그 갈증을 풀어줄 방법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이 물질적인 부자들을 책망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고생고생해서 이제 돈 좀 모으기 시작한 사람들 힘 빠지게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돈 없는 분들이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어도 된다는 그런 뜻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한 가지 부족한 것, 그것을 해결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초대의 이야기입니다. 초대받은 그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지 말라’는 계명 뒤에 숨어있는 ‘하라’는 계명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고, 사랑하라.
간음하지 말고, 사랑하라.
도둑질하지 말고, 사랑하라.
남을 속이지 말고, 사랑하라.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기 위해 세상을 살아간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저 산속의 바위보다 더 나을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사랑하기 위한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뜨거운 심장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긴장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그 사람은 고민합니다. 재물과 안정이냐, 사랑과 나눔이냐? 육체와 영혼의 갈림길, 세상과 하느님의 갈림길에서 그 사람은 고민합니다. 지혜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온 세상의 금과 은을 한 줌 모래, 진흙으로 여기고, 더 높은 차원의 좋은 것을 가져다주며, 헤아릴 수 없는 천상재물을 품고 있는 그 지혜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침묵이 흐른 뒤 그 사람은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왔던 길로 되돌아갑니다. 사랑의 모험을 포기하고 현실에 만족하기로 합니다. 불행히도 그에게는 세상 재물을 천상 재물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쓸쓸히 돌아가는 그 뒷모습을 예수님은 그저 바라보십니다. 귀중한 만남이 덧없이 끝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그 사람은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십계명을 지키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그 무엇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그 무엇을 찾아내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그 속에 들어있는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날 때, 우리가 버려야 할 ‘한 가지 부족한 것’도 드러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영원한 생명을 원하느냐? 그런데 너에게는 버릴 것이 하나 있구나. 그것을 버려다오.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 살게 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