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연중 제27주일(10.06)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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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10-06 13:53 조회638회본문
* 연중 제 27주일 나해
“영원한 동행”
오늘 복음은 혼인미사 때 읽는 복음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제가 혼인미사 주례 강론을 한다는 것도 항상 어려운 일이지만, 부부사랑을 주제로 하는 오늘의 복음에 대해 강론을 한다는 것도 참으로 난처한 일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들로 부부사랑을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결혼생활이란 것은 아름답고 행복하게 시작되지만 그리 순탄한 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서로 마음이 맞고, 생각이 같고,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아 시작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서로 다른 부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고생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부부 일심동체라고들 말하지만 한 침대에서 같이 잔다고 일심동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심동체는 그런 의미에서의 일심동체가 아닙니다. 칼릴 지브란은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성전(聖殿)을 받치는 두 개의 기둥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서로 하나로 합쳐지지는 못하지만, 성전을 받치는 거룩한 역할을 둘이 함께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성실하게 받치고 있는 모습을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바라보지만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결혼에 대한 이런 비유도 있습니다. ‘결혼 생활은 하늘나라로 향하는 기차가 달리는 두 철로이다.’ 가까이 있는 두 철로는 결코 하나로 합쳐질 수는 없지만 끝내 하늘나라까지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결혼생활은 하나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함께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나와 다른 내 배우자는 어떤 때는 나의 결점을 채워주고, 나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어려운 도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사랑에 빠질 때(Fall in love)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릴 때(Fall out of love)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는 사랑을 모릅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시련을 겪을 때 우리는 참사랑을 찾아 얻게 됩니다. 문제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인내롭게 대화하고 또 대화해야 한다는 그것입니다. 대화만이 살길입니다.
대화는 회화하고 다릅니다. 상대방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망과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대화입니다. 저도 이제는 책을 멀리 놓고 봐야 잘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배우자를 너무 가까이서 보기 때문에 다 안다고 생각하고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 서로를 조금 멀리 놓고, 지구라는 별의 여행 중에 만난 또 다른 한 나그네의 삶 전체를 바라보려 노력해보십시오. 얼굴을 보지 말고 그 사람 눈동자 속 저 깊이 펼쳐지는 내면세계를 모험하십시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사제로 살아가면서 별로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또한, 부부들이 알콩달콩 사랑하며 사는 것을 보아도 별 느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제가 어떤 야산에 갔다가 본 장면인데 그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고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그것은 제 앞에서 어느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빛바랜 그분들의 피부 속에는 아직도 따뜻한 사랑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열정적인 젊은 시절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힘겨운 인생의 가시밭길을 함께 헤치고 나와, 이제는 눈부신 천국의 문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그 동행이 정말로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부부생활도 그렇게 아름다운 동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