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04.02)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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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3-04-02 16:24 조회3,957회본문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오늘부터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는 이 한 주간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들려줍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이 한 주간 예수님 마지막 삶의 의미를 잘 묵상하여 부활의 기쁨으로 인도하기 위한 예고편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의미에 맞게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을 깊게 체험하는 한 주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동시에 오늘은 제가 이곳 도쿄한인성당에서 여러분과 드리는 마지막 미사입니다. 저는 이번에 오사카교구 이쿠노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아 다음 주 수요일에 이동합니다. 부활 주일에는 제가 일하는 롯본기 성당에서 미사와 송별식이 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5년 전, 이창준 신부님의 초대를 받아 주일 사목을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어서 고찬근 신부님의 초대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일에 여러분과 함께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저의 본업은 롯본기 성당 보좌 신부이지만 저는 주일에 이곳에 오는 것을 아주 좋아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같은 재일 동포이자, 같은 한민족이고, 같은 신앙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가족과 같은 여러분을 떠나 오사카에 계신 한국 분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수행하러 떠납니다. 이에 마음 한구석은 못내 아쉽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마음은 한편 기대감으로 들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새로운 곳에서 하느님의 종으로서 충실히 봉사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여러 번 경험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장소와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 부친의 전근으로 자주 이사와 전학을 다녔어야 했던 경험, 남자들의 경우 군대를 가서 전혀 생소한 곳에서 생활해야 했던 경험, 직장 때문에 새로운 임지로 발령을 받아야 했던 경험, 유학이나 이민으로 타지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했던 경험, 특히 우리 모두는 고국을 떠나 일본이라는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생에서 자주 새로운 장소와 환경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예수님도 예루살렘이라는 새로운 장소와 환경으로 이동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공생활을 통해 세 번 예루살렘에 가셨고, 예수님 생애 대부분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셨지만,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시는 여정은 이전과 다른 각오와 결단이 필요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시어 인류구원이라는 대업을 완성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이 세상에 보내진 구원자이기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은 분명 두렵고, 떨리고, 한편 가슴이 벅차오르고, 이 큰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었기에 결코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복잡다단한 심경 속에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탁하는 순종과 순명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 하셨습니다. “아버지 손에 저를 맡기나이다.”
우리 모두도 새로운 장소와 환경을 선택했을 때 예수님 같은 비장함과 결단이 필요했었고, 지금은 적응하기 위한 순종과 순명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처럼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장소와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종과 순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타국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고, 나와 우리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순종과 순명을 잘 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저 또한 예수님과 여러분의 모범을 본받아 오사카에서의 생활을 순종과 순명을 계명삼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순종과 순명으로 인류 구원을 완성하셨듯이, 여러분이 순종과 순명으로 일본에서의 삶을 적응 하셨듯이, 저 또한 하느님의 뜻과 이쿠노 신자 분들의 의견에 순종하고 순명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저의 앞으로의 삶에 여러분의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5년의 삶을 되돌아보니, 제가 매주 여기 온 것이 오히려 여러분께 폐를 끼치지는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폐를 끼쳤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여러분 그동안 보여주신 많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늘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행복하고 기쁜 신앙생활, 일본생활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