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06.02)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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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6-02 16:17 조회1,648회본문
*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나해
“피 흘림의 제사”
제사 중에 '희생(犧牲)' 제사가 있습니다. 나의 속죄를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 소나 양을 죽여 제단에 바치는 것이지요. 죽어가는 소나 양의 눈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나를 위한 그 짐승들의 희생에 미안하고 고맙겠지요. 그런데 짐승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 대신해서 죽었다면, 여러분 마음에 그 사람은 어떻게 남겠습니까?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겠지요.
그런데 신의 아들 예수님의 죽음은, 한 개인의 '여생(餘生)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영생(永生)의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무한한 위력(無限威力)을 지닌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십자가 희생 제사를, 우리 교회는 '파스카(Pascha) 희생'이라 부릅니다. 파스카는 '거르고 지나간다.'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죽음의 천사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고 지나간 사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파스카 희생 덕분에 죽음을 거르고 영생으로 건너갑니다.
그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은총을 받아 누리는 성사가 성체성사(聖體聖事)이고, 눈에 보이는 은총이 바로 '성체와 성혈'입니다. 우리는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할 힘을 얻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사랑의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미사 중에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십니다. 몸과 피를 지칭하는 그 빵과 포도주는 미사 중에 예수님의 몸과 피로 실체변화(實體變化, Transsubstantiatio, Transubstantiation) 합니다. 실체변화는 실제로 본질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재연(再演)이 아니라 재현(再現)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미사는 주술적 행위도 아니고, 성체‧성혈 자동판매기도 아닙니다. 우리는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실체적인 변화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희생과 고통은, 우리가 '사랑의 사람'으로 변할 때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옛날 어떤 식인종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한 선교사 신부님이 가셨습니다. 신부님은 정말 헌신적으로 한평생 그들을 돌보며 사셨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한결같이 신부님을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어느덧 많이 연로해지신 신부님은 어느 날, 사목회장인 추장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습니다. "내가 평생 여러분들을 위해서 희생했으니 마지막 소원을 꼭 들어주시게. 내 마지막 소원은 여러분들이 사람 잡아먹는 일을 이제 그만하라는 것일세."
추장은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네, 신부님 잘 알겠습니다. 신부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신부님 뜻대로 사람 잡아먹는 일을 그만하겠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돌아가시면, 신부님은 꼭 먹겠습니다. 신부님을 너무 사랑하고, 우리 안에 항상 남아계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먹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