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부활 제5주일(04.28)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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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4-28 15:12 조회1,737회본문
* 부활 제 5주일 나해
“민들레와 나”
가끔 길을 가다보면 보도블럭 틈새에 민들레 한 포기가 절묘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 그곳에 뿌리를 내렸고 사람들에게 밟히지 않고 수분을 간직하며 꽃까지 피웠을지를 생각하면 놀랍기만 합니다. 그 힘든 운명을 견뎌내고 삭막한 길바닥에 노란 꽃을 피워낸 민들레에게 저는 이렇게 인사합니다. “수고가 많다. 민들레야!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
그 민들레가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받을 때, 저는 성전(聖殿)에 샘솟는 하느님 은총의 샘물을 마음껏 마시면서 미사를 집전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성체를 모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맺은 열매는, 사랑과 이해, 용서와 절제가 아니라 분노와 미움, 나태와 우울함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숨결을 꽃피우는 노오란 민들레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양분을 마음껏 섭취하는 신앙인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줄기에 붙어사는 기생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나무의 이파리가 “나는 태양이 싫어”라고 한다면 참으로 못된 이파리입니다. 이파리는 나뭇가지가 전해주는 수분을 먹고, 태양빛을 받아 양분을 만들어 낼 의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무와 그 가지도 공동 운명체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속하고, 동질성(同質性)이 있어야 하고, 공감을 가지며, 모든 일을 함께 대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지가 열매를 맺을 때 나무는 크게 기뻐합니다.
그러나 기생식물은 나무를 사랑하지 않아 무관심하고, 제멋대로 합니다. 기생식물은 늘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데, 결국 그것은 나무도 죽이고 자기도 죽이는 결과를 만듭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포도나무의 가지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흐르고 있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의 행동방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평화와 사랑을 열매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 포도나무의 기생식물이 아니어야 합니다. 욕심과 교만으로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이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하필이면 포도나무를 비유로 말씀하셨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포도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들보다도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습니다. 즉 예수님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원'을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다 함께 주렁주렁 예수님 나무에 매달려 있기를 그분은 원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우리 신앙인의 길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강한 사람, 약한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성한 사람, 성하지 못한 사람 모두 함께 손잡고 가야 할 길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