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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나해 예수 부활 대축일(03.31)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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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3-31 15:21 조회1,936회

본문

* 예수 부활 대축일 나해

 

 

죽음 이기기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 그 사람은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라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의 큰 문제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으로 넘어간 사람이 예수라는 인간입니다.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부활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인생에는, 고달프기만 해서 슬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고달픈 인생 끝에는 뜻 모를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복해 보지도 못하고 서럽게 죽어야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런가 하면 어떤 인생은 유복(裕福)한 환경에 태어나 승승장구, 어디든 여행가고, 맛난 것 먹고 호화로운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공평하게 죽음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누리고 싶지만, 더 살고 싶지만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죽음을 이기는 길을 가르쳐준 분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마르 8,35) 살아서 죽으면 죽을 때 죽지 않는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살아서 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즉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는 일, 일흔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는 것, 이 모두 에고(ego)를 죽이는 일들이었습니다. 살아서 죽는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에고가 죽고 나면, 그 죽음의 자리에 죽음을 이기는 생명력이 자라게 됩니다. 이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은 우리를 부활시켜주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부활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분입니다. 스스로 부활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께 배우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부활 생명력은 하느님과의 일치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사셨지만, 인간적인 에고를 비우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한가득 채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생명력을 갖게 되셨고, 결국 죽음의 파도가 덮쳤지만, 예수님은 그 파도를 넘어가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도 꼭 부활합시다. 이기심과 본능이라는 에고를 죽이고, 우리 안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그리고 그분의 생명력을 채웁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공부하고,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겪고 또 그 죽음에서 살아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일입니다. 영원한 하느님과 하나 된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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