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신앙의 해, 삼위일체 대축일 > 2014,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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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마영마리아 작성일14-06-23 17:26 조회17,106회본문
< 두 번째 신앙의 해, 삼위일체 대축일 > 2014, 06, 15
제가 지리산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가장 부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아직도 지리산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듣고 있지만
당시 서울교구의 어느 신부님이 세우신 비인가의 '작은 수도원'이었다.
"나는 언제 저런 작은 수도원 아니 기도원을 가져볼 수 있나?" 하는 마음이
제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기도원을 세우신 신부님이 전하던 영성이 바로 '비움의 영성'이었다.
그래서 제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전하게 되면서 조금씩 알려지게 되자
게중에는 제가 전하는 영성을 비움의 영성으로 오해하던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저는 '비움'과 '내맡김'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비움'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내려놓음'이라 하고 싶다.
어떤 어려움에 빠졌을 때 흔히들 하는 말이 바로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여보게 이 사람아, 이제 제발 그만 내려놓아."라고들 말이다.
반드시 무엇을 비워야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비움은 곧 내려놓음이요 내려놓음은 곧 비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비움도 내려놓음도 다 그 '주체'가 남아 있는 것이다.
비운 다음에도 비운 사람이 남아 있고
내려놓은 다음에도 내려놓은 사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비운 다음에는 또 채울 수가 있게 되며
한 번 내려놓은 다음에도 다시 채워지면 또다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맡김',
특히 하느님께 완전히 위탁하는 내맡김, 거룩한 내맡김은
한 번 완전히 내맡기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다.
내맡기는 주체가 아무리 부족하고 죄스러운 주체라 하더라도,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으로 한 번 하느님께 내맡겨,
하느님이 받아주시기만 하면 곧 그 주체가 하느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맡긴 주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다하여도
그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데레사 성녀나 이냐시오 성인이나 후코 성인의 기도들이
바로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의 기도들이다.
완전한 내맡김, 다른 말로 '거룩한 내맡김'은 곧 주체가 "無"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맡김'과 '비움'이나 '내려놓음'의 큰 차이인 것이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각각의 삼위로서 일체,
완전한 하나를 이루신다는 삼위일체이심을 기념하는 오늘,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 교리를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으로 이해해 보고 싶다.
'완전한' 사랑으로
三位 서로에게 '완전히' 내맡겨,
'완전히' 無化되어 '완전한' 하나가 되신 전능하신 하느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