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신앙의 해, 성령강림대축일 > 2014, 06, 08 >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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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신앙의 해, 성령강림대축일 > 2014,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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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마영마리아 작성일14-06-09 13:40 조회17,5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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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신앙의 해, 성령강림대축일 > 2014, 06, 08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이다.

지난 두 주일의 주일미사 강론에 걸쳐서 저는 "성령"에 대해서 언급했다.

신앙생활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는데 그것은 "들음-세례받음-성령받음"이라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성령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신앙생활은 참으로 재미 없는 생활이다.

 

성령을 받기 위한 성령운동은 원래 18세기에 유럽의 개신교에서 시작되었고

20세기에 미국으로 들어와 1960년대부터 미국 가톨릭에서도 받아들이게 되었고

한국 가톨릭에서는 제가 신학생 시절인 1970년 중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감히 성령운동이라는 말조차 사용할 수도 이해하지도 못했을 용어였던 것이다.

 

신자들은 매일미사 참례 열심히 잘하고, 성당에서 봉사활동 잘하고

아침, 저녁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빼먹지 않고 교무금 잘바치는 신자를

소위 "열심한 신자"로 불러왔고 또 그렇게 여겨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운동"은 개신교에서나 하는 운동이며

점잖은 가톨릭 신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운동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저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개신교에서나 가톨릭에서나 성장해 나가면서

잘못된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은사주의의 흐름"이었다.

 

어떤 치유의 기적이나 은사에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고

제가 보기에는 아직도 그 흐름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본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강의에 초대되어 나갔던 모임의 대부분이 성령기도회였고

저는 거기서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서 강의할 때도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 가까이 나가기 위한

디딤돌이니 은사만 붙잡고 부르스 땡기지 말라고 그대로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그대로 디딤돌 위에서 성령의 은사를 붙잡고

부르스 땡기던 사람들이 큰물이 밀려와 떼밀려 가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보아왔다.

지금 한국의 최 대형 교회인 오순절 순복음 교회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굉장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국 가톨릭 성령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적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체험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반대의 잘못된 모습도 적지 않았음이 사실이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말씀 그대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지 성령의 은사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지 은사를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을 체험하면 하느님께서 당신 뜻대로 각자에게 알맞는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저의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화살기도를 통하여

"거룩한 위탁, 내맡김의 영성"을 전하는 은사, 즉 영혼구원의 은사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 은사를 통하여 구원받는 영혼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신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동경한인성당 교우 여러분!

또다시 말씀드리자면 성령을 체험하는 것,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느님의 이름만 열심히 불러보시기 바란다.

 

그 옛날 오순절 다락방에서만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리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원하기만 하면 지금 이 성당 안에서도 뜨거운 성령의 불이 쏟아질 것이다.

 

동경한인성당 교우 여러분!

"성령을 받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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