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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 - 송봉모 신부님의 글 2014.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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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마영마리아 작성일14-02-18 13:55 조회18,0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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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 - 송봉모 신부님의 글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쳐 다닌다. 물고기는 어디를 헤엄쳐 가든 그곳은 물고기가 갈 수 있는 생명의 길, 곧 생명의 도(道)이다.
새는 공중을 날아 다닌다. 새가 공중을 날면서 어디를 가든 그곳은 새가 머물 수 있는 생명의 장소, 곧 생명의 처(處)이다. 그러니 도처(道處)가 생명이다."    - 법구경(도원 스님) -
 
 
'도처가 생명' 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만사에서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안에서 만사를 본다. 이러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 어디에 머물든 그가 가는 모든 길, 머무는 모든 자리가 다 성스러움의 도처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곧 만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며 하느님을 보려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이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행위가 되도록 지향을 둔다.
 
 
이러한 사람은 걸레질을 할 때에는 걸레질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걸레질을 하면서도 다른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대충대충 일을 끝낸다.
 
 
이러한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온전히 살아가지도 못한다.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걸레질을 서두르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엇던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면 또다시 다른 그 무엇을 생각하느라고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전념치 못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누리려는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하든지 그 행위에 충실하고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친다(로마 12,1 참조).
 
 
이러한 사람은 공부를 하든,일을 하든,고생을 하든,괴로워하든,휴식을 취하든, 그 모든 것이 하느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하나하나의 행위에 최선을 다한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사는 것이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게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7)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아가도록 권고한다.
 
 
평신도들은 "일상생활의 현세 임무를 올바로 수행하며,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자기 생활에서 분리시키지 말고 오히려 맡은 일을 하느님의 뜻대로 계속하면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더욱 깊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4장 -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산다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느 것은 아니다. 시끌시끌한 시정(市井)을 떠나 성당 안에서성체조배할 때는 그런대로 주님과의 일치가 이루어지지만 다시 시정으로 나가서 세상일에 휩쓸리게 되면 그 일치가 쉽게 깨진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성당에서처럼 세상 안에서도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기도할 때처럼 활동할 때에도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화살기도일 것이다.
화살기도는 바쁜 일상에서 따로 조용한 시간을 내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서 교회가 마련해 준 기도이다.
 
 
돈 보스코는 화살기도를 가리켜 '상인(商人)의기도'라고 부른다.
세상 한복판에서 활동하는 이의 기도라는 뜻이겠다.
하루의 바쁜 일과 중에서도 짧은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의 애정을 주님게 쏘아 올리는 것이다. 화살기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주님께 향하고 있는지,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영혼의 적과 유혹,사악함을 쳐부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러한 화살기도를 '하느님게 속달로 전하는 메시지'라 불렀다. 화살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경건히 들어 올리면서 평범한 일상 안에서도 지금 이 순간의 성스러움을 살아갈 수 있다.
 
 
곧 평범한 일상의 무수한 일들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
도대체 화살기도의 내적 구조(dynamics)가 어떻게 되어 있기에 이런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는가? 화살기도는 정신이 아니라 마음을 하느님께 붙박아 놓는 기도이다.
 
 
성당에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시선은 주님을 향한다.
하지만 세상일을 하면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묵상하면서는 십자가를 쳐다볼 수 있지만 설거지를 하면서는 힘들다.
이른바 주목(attention)과 지향(intention)의 차이다.
 
 
성당안에서는 주님을 주목하는 것이요,일상에서는 주님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지향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화살기도이다......
이렇게 화살기도를 자주 반복해서 드리면서
지금 이 순간에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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