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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2015.1.11) 오대일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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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스콜라스티카 작성일15-02-27 00:01 조회15,8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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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교회는 지난 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며 주님께서 공적으로 세상에 나타나신 것을 기념한데 이어서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다시 한번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 전례는 주님 세례 축일을 기점으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내일부터 주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해 받은 은혜와 그 당시의 약속 등을 되새기며, 지금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지, 다같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세례자 요한을 찾아오시자,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당대 최고의 예언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다.”(요한 3,28)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루가 3,16)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마태 3,15)라고 말씀하셨고, 그제야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100% 다 하느님의 뜻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기쁘고 좋은 일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슬프고 힘든 일을 당할 때면 정말 이것이 하느님의 뜻인가 의심하게 되고 심지어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을 믿는 겸손한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기보다 오히려 자기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이나 슬픔까지도 하느님의 뜻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당시에 세례자 요한이 베풀던 세례는 죄를 용서하는 세례가 아니었고, 다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세례였습니다.

그렇다면 잘못이 없어서 회개할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이것은 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참된 사명임을 증거하는 동시에 당신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세상에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세례는 공생활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 광야로 나가 공생활을 준비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기 전의 예수님은 단순한 목수의 아들이셨지만, 세례를 받으신 후의 예수님은 이제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는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한편, 우리도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우리가 이미 세례를 받은지 오래 되었건만 아직도 세례 받기 전과 똑같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오로도 “여러분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골로 2,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세례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우리가 이미 받은 세례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우리의 임무를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은 우리의 임무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의 종”의 정체성과 소명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종은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으로서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종은 “민족들의 빛이 되어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이들과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풀어주어야”(이사 42,6-7)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것과 같은 사명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종은 이웃에 대한 자비와 연민의 정을 지닌 사람으로서, 정의를 세우고, 신의를 지키며, 모두에게 빛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도 “하느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빛을 이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공생활을 시작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세례도 일생을 걸쳐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루가 12,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분명 십자가상의 죽음의 세례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때 받으신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끌려가 처형당할”(이사 53,7-10)것임을 이미 아셨고, 결국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의 종으로서 당신의 사명을 다 이루셨습니다.(요한 19,30)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는 말씀처럼 우리가 매일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겨우내 땅 속에 묻혀있던 씨앗이 봄이 되면 새로운 싹을 피어내는 것처럼 우리도 세례 때 받은 천상 생명의 씨앗을 잘 키우고 가꾸어서, 마지막 죽음의 세례 때 모든 죄의 허물을 벗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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