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공현 대축일(2015.1.4) 오대일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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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스콜라스티카 작성일15-02-25 23:46 조회15,958회본문
주님공현 대축일
오늘은 주님공현 대축일입니다.
주님공현이란 주님께서 공적으로 나타나셨다는 말이며, 우리의 갈라진 형제인 동방교회에서는 성탄 대축일보다 공현 대축일을 더 성대하게 보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태어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 민족인 동방박사들에 의해 공적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러니합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복음서는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예수님께 바친 선물이나,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착했던 도도한 헤로데 왕이 박사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귀담아 들은 걸로 봐서는 그들은 아마도 재력과 신망을 겸비한 이방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도를 보고도 길을 제대로 못찾는데, 어떻게 별을 보고 확신에 차서 길을 떠날 수 있었을까요?
별이 네비게이션처럼 정확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불확실하면서도 먼 길을 떠날 수 있는 건, 결코 인위적인 힘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즉 자신들 밖에서 오는 강한 힘에 이끌려 길을 떠나 예루살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이 자리에 나온 것도 모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인도에 의해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별의 인도가 그들을 곧바로 베들레헴으로 가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별이라는 ‘네비게이션’에는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이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왕에 대한 생각을 정화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즉 그들이 고단한 여정 속에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숱한 유혹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세상을 구원할 왕은 도대체 어떤 왕일까?
필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굉장한 왕일거라는 큰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이 아닌 예루살렘에 먼저 도착했고, 그곳에서 세상의 가치관대로 생각되어지는 왕을 찾았지만, 진정 이 세상을 구원할 왕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 상을 버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곧바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은 것을 놓고서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별을 놓쳤을 지도 모릅니다.
본래 별은 어두울 때 더욱 밝게 빛나는 법입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시내에서 바라보는 별과 가로등도 없는 한적한 시골에서 바라보는 별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즉 화려함이 가려진 소박함 속에서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이라는 화려함 속에 가려져 별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화려하고 찬란함 속에서는 진정 이 세상을 구원할 왕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동방박사들이 너무나 초라한 말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고는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더 없이 기쁜 마음에 자신들이 준비한 선물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바친 세 가지 예물은 모두 특별한 의미가 담긴 예물입니다.
첫째로, 황금은 당시에 가장 귀한 것으로서 왕께만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것을 예수님께 바쳤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진정한 왕이심을 나타냅니다.
둘째로, 유향은 대사제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시는 대사제이심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몰약은 시체가 썩지 않게 바르는 일종의 방부제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것을 이제 갓 태어난 아기에게 바쳤을까요?
그것은 미래에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방박사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선물을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선물은 그것의 객관적인 가치보다 그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정성어린 마음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소중한 마음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한편, 이방 민족인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유다인의 왕”이라는 것을 알고 그분께 경배하였지만, 유대인인 헤로데는 자신의 왕권을 빼앗길까봐 두려워 예수님을 찾아내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헤로데는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가 가진 것에 집착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사람은 하느님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도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 안의 굳게 닫혀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 은총과 함께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용기를 청합시다.
끝으로, “네 번째 동방박사”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도 다른 동방의 박사들처럼 별의 인도를 받고 많은 예물을 준비하여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도중에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이 준비했던 예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게 되었고, 결국에는 준비했던 예물을 모두 다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더 나누어 줄 것이 없어서 남의 빚을 대신 갚아 주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팔아 33년 동안의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멀리서부터 예수님을 만나려고 애써 왔건만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예수님을 만난 것은 바로 십자가상 처형 현장에서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가진 것을 다 나누어주고 지쳐서 죽을 때에야 비로소 십자가상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는 마지막 남은 숨을 몰아쉬며 신음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주님, 이제야 주님을 만났군요.
그러나 저는 지금 아무것도 남은 게 없습니다.
주님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것들을 모두 남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주님, 그러나 저의 마음만은 여기 남아 있습니다.
저의 이 마음을 받아주소서.”하고는 눈을 감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별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준비한 최고의 선물을 예수님께 바쳐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또 하나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아니지만 저희의 작은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시고,
미약하나마 저희가 이 세상을 환희 밝히는 작은 별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