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대림 제4주일(2014.12.21) 오대일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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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스콜라스티카 작성일15-02-11 00:03 조회16,421회본문
나해 대림 제4주일
오늘은 대림 제4주일로서, 대림초에 불이 모두 환하게 켜졌습니다.
이제 사흘 뒤면 예수님께서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교회는 대림시기 마지막 주일 복음을 통해서 성모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성모님이야말로 주님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올바른 신앙인의 모범이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구세주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데 천사의 소식은 놀랍기만 합니다.
즉,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이를 갖게 될 것이며, 그 아이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조상 다윗의 왕위를 이어 영원한 나라를 이룩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리아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고 불가능하게만 생각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엘리사벳의 예를 들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당시의 율법에 의하면, 처녀가 아이를 갖으면, 돌팔매질로 죽임을 당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죽음을 각오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천사가 말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해도,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능력을 믿고 자신의 미래를 그분께 맡겼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신앙과 겸손의 자세가 있었기에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한편,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알릴 때는 외부와 차단되어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소식을 전하던 가브리엘 천사가,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시골 동네의 한 처녀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데 나자렛은 구약성서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어서, 당시 사람들조차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볼 때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작은 시골 마을의 한 처녀에게 인류의 역사가 바뀔 가장 중요한 말을 전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가치 없다고 여기는 하찮은 것을 통해 당신의 일을 완성하신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대로 마리아는 은총을 가득히 받고 있던 사람입니다.
이것은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거룩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어머니로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마리아는 몸으로 우리 주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잉태하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그 약속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어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4천 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것은 정치적, 현세적으로 강력한 메시아였지만, 실제로 나타난 분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내세우는 분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약속을 믿기 위해서는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와 함께 때로는 우리의 기대를 포기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을 꼭 지키시는데,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약하고 욕심이 많기에 하느님께 수시로 무엇을 청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주십시오, 저런 식으로 해주십시오’ 라고 조건을 내걸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보시기에 좋은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 인간은 하루 앞을 내다보기도 어렵지만, 하느님은 영원을 보시기에 우리에게 진정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좁은 소견을 고백하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움과 불의가 판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에 순명하여 주기를 애타게 부르짖고 계시며, 세상의 피조물도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여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함으로써 이 세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끝으로 베르나르도 성인의 기도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천사는 당신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자하신 동정녀여, 낙원에서 추방당한 아담도, 그의 비참한 후손들이 당신께 이것을 애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에 거하는 조상들, 바로 당신의 조상들도 이것을 애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당신 발아래 엎드려 이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정녀여, 속히 응답하소서. ‘말’을 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으소서.
인간의 ‘말’을 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소서. 일시적인 ‘말’을 하시고 영원한 ‘말씀’을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