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해 연중 제13주일(06.27)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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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6-27 16:21 조회5,922회본문
* 연중 제 13주일 나해
“손을 대기만 해도”
누군가 한 성인(聖人)에게 물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천국과 지옥을 믿어서 착하고 열심하게 살았다가 나중에 그것이 없으면 억울하지 않겠소?” 그러자 성인이 대답했습니다. “당신, 하느님을 믿지 않고,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고 막살다가 나중에 그것이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믿음을 가지고 착하고 열심하게 살면 살아서 행복이요, 천국이 기다리고 있으면 죽어도 행복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루마니아의 한 유태인 마을 시게트의 지도자 '모슈에'라는 사람이 독일군에게 잡혀가 폴란드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탈출에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기 고향 유태인들에게, 지금 유럽 전역에서 유태인에 대한 가혹한 박해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으로 망명하자고 제의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들어본 적이 없고, 어떻게 20세기의 인간이 그런 일을 저지르겠냐고 말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랑스럽고 안정된 고향을 떠나는 것보다는 모슈에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편했습니다. 얼마 후 그 마을 유태인들은 모두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고, 그때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믿음의 문제는 행운을 얻고, 복을 누리는 차원을 넘어, 생명과 죽음을 결정짓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의 현재 생활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등장인물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정도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비웃었던 사람들; 이런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권능보다 자기 자신을 더 믿고 있는 교만한 사람들로서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은총도 받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따르며 밀쳐 댔던 군중들; 이들은 신앙생활의 의미도 모르고 그저 다른 신앙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맹목적인 신앙인들입니다. 이들은 익명성을 가지고 사람들 안에 파묻혀 있으며, 예수님과 구체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셋째, 딸이 죽었다고 실망했던 사람들; 이 사람들은 믿음에 있어 한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다가도 큰 시련이 닥치면 무너지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믿고 있다가 불리하거나 억울하거나 고통스러우면 포기할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평소에 예수님으로부터 작은 은총은 받아 누리지만, 의지가 부족하여 큰 은총을 받기에는 그릇이 작은 사람들입니다.
넷째, 예수님께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하혈하던 여자; 이런 신앙인은 예수님께 대해 전폭적인 믿음을 가지고 자신 앞에 어떤 시련이 닥쳐도,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예수님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모범적인 신앙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부디, 딸이 죽었다고 실망했던 사람들처럼 힘든 일이 닥치면 무너지는 믿음이 아니라, 하혈하던 여인처럼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믿음이란 것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허황된 내 생활을 고쳐주고,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큰마음을 주며, 벗을 위해,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용기를 줍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목적, 즉 살 이유와 죽을 이유를 제시해주는 아주 소중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