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해 연중 제12주일(06.20)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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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6-20 15:59 조회6,032회본문
연중 제12주일 – 인간 세상의 발전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라는 믿음
어느 신부님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서 예루살렘 통곡의 벽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며칠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자주 통곡의 벽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때마다 열심히 기도하는 한 유태인 노인을 발견하곤 호기심이 생겨 통곡의 벽으로 직접 가서 그 노인을 만나 물었습니다. "어르신은 매일 통곡의 벽에 오시는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매일 기도하시나요?" 유태인 노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후에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와서 지구의 죄악과 질병이 사라지도록 기도한답니다." 신부님은 노인의 신실한 신앙에 무척 감동을 받아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르신은 이렇게 기도하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노인은 "아마 삼십 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신부님은 놀라면서 "그렇게 삼십 년 이상 기도하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대답 했습니다. "벽 보고 기도하는 느낌이지요."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지만 때로 마치 벽에다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 대답도 없고, 아무 응답도 없는 하느님을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의 태도를 보면 좀 그런 기색이 보입니다. 돌풍을 만난 제자들은 죽겠다고 난리인데 예수님은 쿨쿨 주무시고만 계십니다. 그런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듭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런 제자들에게 돌아 온 예수님의 대답은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는 말씀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오늘 복음 말씀을 폭풍마저 잠재우시는 예수님의 위대함에 촛점을 맞추어 이해할 수도 있지만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와의 사투를 생각한다면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는 예수님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하느님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인간들의 원성은 높아만 가는데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마치 유태인 노인처럼 벽에다 이야기 하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하느님은 정말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알아서 다 해 줄테니 잠자코 기다려라일까요? 상황이 이렇게만 흘러가고 이런 식으로 예수님 말씀을 알아 들었다면 우리가 하느님 믿는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하느님이 너무 무뚝뚝하고 인간들의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드라마 같은 극적인 반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사를 놓고 싸우는 이 싸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의 반전의 키포인트는 예수님께서 덧붙인 말씀에 있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우리에게 이런 현실에 굴복하지 말고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 앞에서 믿음은 무엇이고, 하필 이 시점에 믿음을 회복하라는 황당 시츄에이션은 또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회복하라는 믿음을 이렇게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그 믿음은 무조건 믿고 기다리면 잘 될 것이라는 희망고문도 아니요, 하느님만 믿으면 만사가 해결되리라는 맹목적인 믿음도 아닙니다. 그 믿음은 인간 역사 안에서 인간의 생명 수호와 발전을 위해 악과 불의의 세력과 싸웠던 모든 사람들의 숭고한 뜻과 투쟁을 기억하고 믿으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 안에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이 인간의 생명과 삶을 더 안전하고 윤택하게 해주리라 믿고 끝까지 투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항일 투쟁 열사들이 있고, 인간의 생명 수호를 위해 싸웠던 과학자와 의사들이 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안타까운 희생을 당한 이들도 있고, 여성, 장애인, 어린이 등 약자의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운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인간의 생명과 발전을 위해 싸웠던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희생과 헌신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분들이 싸우고 투쟁하고 목숨 바칠 수 있었던 믿음, 그 믿음을 회복하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부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는 이미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백신이라도 맞을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희생과 헌신이 인간의 생명과 삶을 더 안전하고 윤택하게 해주리라는 믿음, 그 믿음을 회복하고 동참한다면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도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종교적으로 신앙의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라기 보다 인간들의 희생과 헌신을 가능하게 한 그 믿음을 기억하고 더 낳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더 분발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