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해 연중 제13주일(06.28)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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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0-06-30 09:54 조회10,061회본문
* 연중 제 13주일 가해
“상실의 아픔 뒤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 10,37-38)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 앞에 서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 형제, 자매, 아내, 그리고 자기 목숨이 우리를 붙잡고 서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나의 기쁨, 나의 안정’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실천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도 많고, 실패할 경우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본전을 챙기며 교묘하게 성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정한 사랑실천은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상실의 아픔’ 뒤에 솟아나는 어떤 것이지, 내 것들을 그대로 보존하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 10,42)
우리는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육체와 영혼은 오랜 갈등의 관계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세속은 육체적인 행복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교회는 영적인 평화를 위해 육체적인 것을 죄악시 해왔습니다. 그러나 육체와 영혼은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너무 강조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보기에 현대사회는 아직 영육간의 조화가 덜 된, 즉 육체적인 것에 치우쳐 영적인 빈곤 속에 살아가는 사회라고 생각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영양실조이고, 부자들은 육체적으로 영양과다입니다. 배고파서 죽는 사람도 많지만, 너무 먹어서 생긴 병으로 죽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적인 빈곤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자살을 택하는 선진국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과연 영육간의 빈곤 문제는 해결되기 힘든 것일까요? 육체적 빈곤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먹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진 사람들의 희생과 나눔이 필요합니다.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기 것을 나누어 줄 때,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베푸는 체험을 통해 영적인 풍요를 얻고, 없는 사람들은 그 나눔의 혜택을 받음으로써 육체적인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눔’이라는 것이 바로 영육간의 조화를 만드는 아주 훌륭한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눔을 잘 실천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금욕과 명상, 즉 절제와 기도로 꾸준히 훈련해야 합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 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