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해 연중 제12주일(06.21)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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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0-06-21 17:23 조회10,090회본문
* 연중 제 12주일 가해
"머리카락까지“
지금 우리는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코로나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악몽도 아니고 옛날얘기도 아니고 엄연한 현실입니다. 출구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무려 4개월 만에 어렵사리 오늘 미사가 재개되어 정말 많이 기쁩니다. 오랜만에 성당 오시는 길 잘 찾아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4개월 동안 여러분들은 생명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분들은 하느님이 더 또렷이 드러났고, 어떤 분들은 허무함만 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코로나 같은 것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실까? 원망스럽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이제까지 우리가 전념했던 그 많은 일들이 불가능해져서, 아무 보람과 의미도 없이 세끼 밥 먹는 일에 치중할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부디, 고통스럽고, 두렵지만 우리에게 닥쳐온 코로나라는 쓰나미를 잘 넘어, 우리 모두 보다 깊이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인생, 새로운 신앙, 새로운 교회공동체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 10,28)"는 예수님 말씀이 나옵니다. 평소에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 운명의 주인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칭찬과 비방에 한없이 휘둘리고, 비겁하게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면서 지내오지 않았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는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누가 정말 두려운 분인가를 여실히 알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오장육부가 정확히 어디에 붙어있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모릅니다. 하루에도 수시로 빠지는 머리카락이 얼마 남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의 오장육부를 만들어주시고, 언제나 우리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시편 139),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고 계신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만들고 유지 시켜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으나, 죄스러운 우리 생각도 꿰뚫어 보시고, 준비 안 된 오늘 밤이라도 우리 생명을 거두어 갈 수 있는 분이 바로 그분이라 생각하면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건강을 허락해 주신다면 이런저런 일들을 해도 좋을지 항상 그분께 여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드신 귀한 도구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번 코로나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세상을 유지관리하는 하느님의 도구임을 더 깊이 깨닫고, 서로서로 더욱 절실히 사랑하는 가운데, 아름답고 건강한 환경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마태 10,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