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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06.24)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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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0-06-25 09:32 조회9,9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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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가 1,57-66)

 

 

탄생의 의미

 

어린 아기의 탄생을 보면 과연 이 아기가 어떤 사람이 될까 참 궁금합니다. 아기의 티 없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우주에 버금가는 신비를 느낍니다.

 

우리 인간 생명의 주인은, 인간 삶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아기 요한을 우리 마음대로 즈카르야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요한이 자기의 할 일을 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탄생에도 하느님의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순수의지를 우리는 보존하고 키워왔는지, 아니면 내 뜻에 매몰되어 하느님의 뜻은 싹도 못 트게 만들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탄생과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봅시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루가 1,59-60)

 

 * 광야에서 생활한 세례자 요한에게서 배울 점들

 

우리는 우선 세례자 요한이 일상을 떠나 있던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상을 떠난다는 것은 꼭 물리적, 공간적으로 떠난다는 것보다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세례자 요한의 고독입니다. 칠흑같이 검은 밤, 풀벌레와 들짐승의 소리를 들으며 잠들어야 했을 그 고독을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적인 위로와 인간적인 즐거움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절대고독에 몸부림치며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오심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고,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 어떤 채울 수 없는 고독을 느끼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만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다음은 세례자 요한의 배고픔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불쌍한 육체 덩어리의 한계를 알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원초적인 고통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알았기에 그는 나누지 않고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족속이라고 꾸짖을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머리로는 배고픔을 모릅니다. 육체는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대자연 속에 육체를 던져보면 인간 삶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열립니다.

 

세례자 요한은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삶을 고쳐보려고 시도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고,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촉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한 의지가 있어야 자기 삶을 고칠 수 있고, 목숨 버릴 용기가 있어야 사회 부조리와 싸울 수 있고, 열정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회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자신과 사회와 이웃에 대해 타협을 모르는 도전자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멋진 것은 그의 겸손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모여와 머리 숙여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그에게 혹시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잘라 대답합니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초차 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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