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해 연중 제22주일(08.30)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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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0-08-30 16:13 조회9,688회본문
* 연중 제22주일 (가해)
“고통, 인생의 진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신앙인이 되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신앙을 갖게 되면 여러 가지로 불편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되면 돈도 갖다 바쳐야 하고, 시간적으로도 제약을 받게 되고, 때로는 힘든 봉사와 희생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신앙인이 되면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첨단의 편리함과 웰비잉(Well-Being)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십자가 고통을 외치는 신앙인들은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욕을 먹고, 조롱받는 신세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길을 고집하셨습니다. 욕을 먹고, 조롱거리가 되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고통 속에 인생의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쉬운 길을 포기하고 힘든 길을 개척하셨습니다. 평생, 고독과 고통 속에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약이 된다는 것을 잘 아셨기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한 고통은 자기를 성숙하게 해주고, 타인을 위한 고통은 타인을 살립니다. 또한, 고통을 함께 겪은 공동체는 단결되고 힘 있는 공동체가 됩니다. 고통이 약이 된다는 것은 만고(萬古)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이 고통 없는 파라다이스이기를 바랍니다. 고통 없이 태어나고, 고통 없이 성장하고 배우며,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면서 살아가는 인생, 참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어진 행복은 정말 맛없고, 의미 없는 행복입니다. 산고(産苦)를 체험한 어머니만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목이 타는 갈증을 느껴본 사람만이 물맛을 알고, 고독을 경험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으며, 죽음의 고통을 알아야 삶의 가치도 그만큼 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의 인생 안에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이 세상이 점점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오래 살게 되어가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더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더 소외되는 계층이, 더 가난해지는 나라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가진 사람들에게는 고통 없는 행복이 점점 늘어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행복 없는 고통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고통 없는 행복은 허무한 행복이며, 행복 없는 고통은 우리 모두의 탓입니다. 이 고통과 행복이 적절히 분배된 세상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통만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만 고통 없는 행복을 경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구원을 위해서 ‘제일 큰 십자가’를 지고 앞장서 가시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성숙을 위해서, 우리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 나아가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참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들의 작은 십자가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물신(物神)주의를 숭배하고, 향락문화를 추구하며, 귀족과 노예가 다시 생겨나는 이 시대에, 고통과 희생을 자처하는 우리들의 촌스러운 선택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지고 계신 십자가는 무슨 십자가입니까? 돈이나 시간의 십자가입니까? 명예나 체면의 십자가입니까? 아니면 희생과 용서의 십자가입니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