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해 연중 제27주일(10.04)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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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0-10-04 18:11 조회9,059회본문
* 연중 제27주일 가해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밧데리를 넣어야 시계가 살아있듯이, 누군가 태엽을 감아주어야 인형이 움직이듯이, 우리 사람도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장이 어떻게 계속 뛰고 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의 힘으로 우리의 심장이 지금도 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밧데리가 다하면 시계가 죽고, 태엽이 다 풀리면 인형이 움직이지 못하듯이 우리 생명도 언젠가는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우리가 모든 것의 주인인 양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 년 만 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얼굴에 분 바르고, 맛난 것 먹고, 멋진 옷 입고, 좋은 집에서 오래오래 살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법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남에게 상처 입히기도 하고,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 자연을 파괴하여 공장도 세우고, 고층 아파트도 계속 짓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런 욕심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재해를 초래합니다. 이천 년대를 맞은 인류가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아기 예수’라는 뜻의 ‘엘니뇨(el Niño)’ 자연현상이 홍수와 가뭄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참 아이로니컬한 일입니다. 신문지상에는 빈민들의 아우성과 자살과 험한 범죄들이 날로 늘어나고, 국제적으로는, 사상(이데올로기)전쟁이 아니라 이제는 기름 전쟁, 식량 전쟁, 물 전쟁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점점 더 야만스러워져 가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낳고, 죄는 더 큰 죄로 발전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주인의 뜻을 무시하고 주인의 재산을 차지하려 했던 욕심 많은 소작인들의 말로(末路)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들의 배은망덕, 적반하장, 분수망각, 파렴치함, 강도심보는 주인의 큰 분노를 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점점 더 하느님을 멀리하고, 인간 스스로 주인이라 자처하고 있습니다. 자연파괴와 전쟁과 착취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 대로라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라도 무엇인가 해야 할 터인데,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미약하기만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존재가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예수님 시대도 그랬습니다. 야만적인 힘이 세상을 지배했고 아우성과 피눈물이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절망이 짙게 드리운 세상이었지만 예수님은 홀로 일어나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 십자가 희생은 하느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향기로운 번제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인간 생명의 주인, 자연의 진정한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주신 그분께 우리는 합당한 도조(賭租)를 바쳐야 합니다. 이 유혈과 아우성의 시대에 우리가 그분께 바칠 도조가 있다면 그것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공평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길처럼 어려울지라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보다는 덜 힘들고 덜 외롭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