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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나해 연중 제18주간 금요일(08.09) 이노쿠마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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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8-10 09:39 조회8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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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찬미 예수님!

 

다음 주가 되면 일본이 패전한 날, 여러분의 경우에는 해방의 날 즉 광복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입장이 아주 다르지만 우리는 똑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이 날을 맞이할 때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금 우크라이나와 가자 같은 전쟁터에서 오늘도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아이들,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욱더 열심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야 됩니다.

어떤 상황이 되도 끝까지 살아가야 됩니다.

 

순교자들이란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들은 끝까지 살아가려고 노력하셨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이 주신 은총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살리게 하려고 자기 목숨을 바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생,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만났던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을 살리는 과정에서 결국 자기 인생을, 자기 목숨을 바치셨다는 것입니다.

 

근데 어떤 사람들이 지금도 그런 예수님의 죽음을,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해요. 의미가 단 하나도 없었다고.

주변에 있는 사람, 자기를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을 던지고 죽는 것이 개죽음인가요?

전쟁터에서 돌아가셨던 분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들의 죽음이 절대 개죽음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순교자들과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죽음자체는 똑같은데.

사랑을 실현하려고 할 때, 사랑을 지키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순교자들은 무기를 손에 들고 싸울 수도 있었지만, 그런 방법을 절대 쓰지 않고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하면 우리는 다 죽으니까 어쩔 수 없이 결과적으로 총을 손에 들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께 물어보는데 미안합니다만,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이 나이에도 아직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제 눈앞에서 엄마가 살해당하면, 동생들이 죽으면 총을 손에 들고 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총을 손에 드는 그 순간에 그래도 사랑을 이루는 방법을 남겨주셨던 예수님을 생각해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은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살아가야 됩니다.

어떤 상황이 되도 끝까지 살아가야 됩니다.

근데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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