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해 연중 제15주일(07.12)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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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0-07-12 17:55 조회9,848회본문
* 연중 제 15주일 가해
"뿌려지는 말씀과 마음 밭"
똑같이 하루 세 끼를 먹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삶, 이타적인 삶, 온유한 삶, 공격적인 삶...
같은 성경말씀을 듣고 우리 신앙인들도 다양한 모습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기복적인 신앙생활, 봉사하는 신앙생활, 미지근한 신앙생활, 광적인 신앙생활... 이 모두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靈)과 육(肉)을 가진 존재이고 그 영육간의 건강을 모두 채워주기 위해서, 우리 미사는 영을 위한 말씀 전례와 육을 위한 성찬 전례가 합하여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알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우리 미사는 참으로 좋은 보약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균형 잡힌 영양공급을 위해서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강론을 합니다. 같은 성경말씀으로 매번 다른 강론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제가 민들레 홀씨처럼 허공에 뿌리는 그 말씀들이 여러분 마음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 언젠가는 꽃을 피우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맥이 빠집니다. 열심히 강론을 해도 여러분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시는지, 신앙의 진리들을 얼마나 더 깊이 깨닫게 되셨는지, 그래서 여러분들 삶은 어떻게 변화되어 가시는지 저에게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좋은 말들에 중독되어 오히려 마음이 무디어져 가시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통해 여러 종류의 마음 밭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첫 번째는 길바닥으로 비유된 ‘아둔한 마음 밭’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잘 몰라서 이 땅에 엉뚱한 나라를 세웁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나라가 아니라 명예를 추구하고, 경쟁해서 이기면 섬김을 받는 그런 나라를 세웁니다.
두 번째는 돌밭으로 비유된 ‘의지가 약한 마음 밭’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는 괜찮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본색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인내심이 고갈되면 돌변하여 분노를 터뜨립니다. 결국은 하느님 나라를 망가뜨립니다.
세 번째는 가시덤불로 비유된 ‘유혹이 많은 마음 밭’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다른 즐거움에 대한 유혹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헛된 것을 찾아 하느님 나라를 떠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으로 비유된 ‘깨달은 마음 밭’입니다. 이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들로서 ‘겸손하고, 의지가 강하며, 단순하여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랑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웁니다.
그런데 과연 좋은 땅의 조건은 무엇이겠습니까? 좋은 땅은 부드럽습니다. 좋은 땅은 습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양분이 있습니다. 부드러움은 온유함입니다. 습기는 감수성입니다. 남을 위해 울 수 있는 마음이지요. 양분은 썩어야 생깁니다. 남을 위해 속을 썩는 것입니다. 즉 희생을 의미합니다. 함께하는 온유함과 함께 우는 감수성, 남을 위한 희생심이 있는 사람이 좋은 마음 밭의 사람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좋은 땅입니까? 아니면 길바닥입니까? 돌밭입니까? 가시덤불입니까?
그러나 혹시 좋은 땅이 아니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길바닥이나 돌밭, 가시덤불 속에서도 죽지 않고 극복하여 꽃을 피운다면 그 꽃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꽃씨 뿌리는 마음은 참 고운 마음입니다. 꽃씨 뿌리는 예수님의 고운 마음과, 꽃을 피우는 인간의 성실한 노력이 만날 때 세상은 한층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마태 13,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