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해 사순 제3주일(03.07)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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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3-07 16:19 조회7,286회본문
* 사순 제 3주일 나해
“화난 얼굴”
오늘 복음에는 화가 나신 예수님 모습이 등장합니다. 늘 용서해주시고 사랑 많으신 그 예수님께서 오늘은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여러분은 화를 잘 내시는 편입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 얼굴표정은 유난히 화가 난 듯한 표정들입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정말로 무서운 얼굴들을 하고 다닙니다. 말을 걸기도 겁납니다. 핸드폰을 받을 때도 위압적인 목소리로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 많은 역사 속에 하도 많이 당하고 살아와서 그런가 봅니다. 화병(火病)이라는 말도 우리나라에만 있습니다.
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신경질(神經質), 짜증, 분노(忿怒), 격노(激怒), 격분(激忿), 의노(義怒) 등등.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화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이냐?’ 이것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편안함과 이익을 위한 화가 있겠습니다. 화에다 등급을 매긴다면 이런 화는 가장 저급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짐승들도 이런 화를 내니까 말입니다. 아무리 순한 개라도 밥 먹을 때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 또한, 자존심과 명예를 위한 화도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고상한 것 같지만 역시 이기적인 수준의 화입니다. 다음에는 공동체를 위한 화가 있겠습니다.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수많은 데모가 우리 사회에 있어 왔습니다. 역사 속에서 민중의 분노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분노도 대중몰이식 집단 이기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화는 바로, ‘거룩한 화, 거룩한 분노’입니다. 오늘 복음 속의 예수님이 바로 그 거룩한 분노의 화신(化身)입니다. 거룩한 분노는 나를 위한 것도, 우리를 위한 것도 아닌, 하느님을 위한 분노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다 하시던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이 깨져나가는 것에 대한 분노 말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수도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화를 내도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어느 때입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네가 조용히 기도하고 있을 때, 어떤 자가 다가와서 이유 없이 네 머리를 때린다면 그때 너는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또 네가 조용히 기도하고 있을 때, 어떤 자가 다가와 이유 없이 네 오른팔을 잘라 갔다면 그것도 화낼 이유가 못 된다. 그러나 어떤 자가 너에게서 예수님을 빼앗아 간다면 그때 너는 화를 내도 된다. 크게 분노하고 싸워서라도 네 예수님을 되찾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 즉 우리 삶의 전부이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우리 인생은 목표를 잃고 헤매다 죽을 수밖에 없는 덧없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위해서 분노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분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정말 온유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일흔일곱 번씩이라도 참고 용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를 내지 않기가 그리 쉽겠습니까? 그래도 정말 화가 날 때가 있다면, 한 번 더 생각합시다. 이것이 과연 나를 위한 화인가, 예수님을 위한 화인가? 만약에 나를 위한 것이라면 한 번 더 참고,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면 의연하게 분노하십시오.
나를 위한 분노는 초라하고 부끄럽지만, 예수님을 위한 분노는 거룩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