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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나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06.06)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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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6-06 16:12 조회6,5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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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나해

 

 

풀을 먹는 사자

 

넓은 들판에 들소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그때 사자들이 몰래 다가가 그중 한 마리를 덮칩니다. 들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사자들은 잡은 들소를 갈가리 찢어 먹습니다. 살아남은 들소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풀을 뜯으며 불안한 평화를 되찾습니다.

 

짐승이 아닌 우리네 인생도 치열한 약육강식을 살아갑니다. 누군가 누군가를 잡아먹어야만 잠시 평화가 옵니다. 대개 강자들이 약자를 먹습니다. 강자들은, 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약자를 잔인하게 먹어치웁니다. 여러분은 강자입니까? 약자입니까? 여러분이 우아하게 소고기 스테이크를 칼질하려 할 때, 평생 일하며 주인에게 충실했던 그 소의 커다랗고 선한 눈동자가 눈에 밟히지 않는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이미 강자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오늘 채식주의를 주장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에서 어떤 사자가 더이상 약한 동물을 먹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다른 사자들에게 밥으로 내놓는다면 얼마나 신기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자를 먹은 다른 사자들도 이제 하나하나 다른 사자들의 밥이 되어 준다면 얼마나 신기한 일이겠습니까? 아마 그런 일이 동물의 왕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우리 인류역사 안에 일어났습니다. 미움과 시기질투 속에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우리 인류에게 예수님은 보란 듯이 당신의 몸을 양식으로 내놓으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뜯어 먹으면서 사랑과 희생을 깨달으라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더 욕심을 부리는 우리 인간들. 지구의 중력처럼 미친 듯이 죄로 떨어지는 우리 인간들. 그 멸망을 향한 치달음을 멈추시려고 예수님께서 당신 몸을 밥으로 내놓으셨습니다. 부당한 우리의 식탁에 당신의 몸을 올려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천주교회는 정말로 소중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사 중에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먹음으로써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분처럼 살기로 결심합니다. 세상이 온통 이기심과 미움의 힘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랑과 희생의 힘으로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되돌리는 투사들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우느라 허기가 졌을 때 우리가 먹을 양식은 예수님의 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당신 몸을 내어놓은 첫 번째 사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첫 사자의 몸을 먹은 다음 사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도 먹혀져야 합니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먹는 것을 멈추고, 자기 몸을 양식으로 내놓는다면, 아마도 이 세상은 더이상 불안과 의심이, 피눈물과 원한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언젠가 먼 훗날, 사자가 사자를 먹었던 그 아름다운 전설도 끝났을 때, 풀을 먹고도 더 장대해진 사자들이 들판에 우뚝 서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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