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03.28)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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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3-28 16:04 조회7,512회본문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나해
“배신의 씨”
여러분은 살면서 배신(背信)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혹은 배신을 당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 성주간을 시작하는 성지주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던 군중이 며칠 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악을 쓰는 군중으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군중의 환호와 인기는 덧없는 것임을 느끼게 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군중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구세주’이시라고 환호했지만, 이스라엘 최고의회에서 그분을 단죄하자 너무나 쉽게 그분을 버립니다. 그렇게 배신하는 그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예수님은 순순히 죽음의 길을 걸으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나를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제자 유다의 배반은 더 드라마틱합니다. 예수님 그분을 배반하는 마지막 행위가 그분께 입 맞추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사랑과 신뢰의 표지인 입맞춤이 배반의 표지로 변했을 때, 그 입맞춤을 받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왜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구세주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던 구세주와 예수님은 아주 달랐습니다. 그들은 구세주가 자기들만 구원해주시고, 자기들이 원하는 식으로 위로와 도움을 주는 분이시기를 바랐지만,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만의 예수님이 아니셨고 천민, 죄인, 원수 같은 이방인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부유와 평안을 주시지 않고 가난과 십자가를 요구하셨으며,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하느님께 바라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아 해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번 용서하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하시고,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리고 싶은데 다른 뺨마저 내놓으라 하시고, 윗자리에 좀 앉아 볼까 했더니 끝자리에 내려앉으라 하시며, 성당 앞에서 기도하면 어때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 하시고, 큰맘 먹고 거금을 헌금했는데 과부의 푼돈만도 못하다고 무시하셨습니다. 법대로 이혼장을 써주면 이혼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 아내를 버리면 천벌을 받으리라 겁주시고, 재물을 좀 쌓아두려 했더니 오늘 밤에 데려가신다고 협박하시고, 뭐가 그리 급하다고 아버지의 장례까지 남들에게 맡기고 당신을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사사건건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셨고, 잘했다 싶은 것도 전혀 칭찬해주지 않으셨으며, 예수님의 위로를 좀 받으려고 했을 때는, 더 힘든 멍에와 십자가를 내미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다른 구세주를 기다리기로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무언가 바라는 마음은 배신의 씨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주님께 이러저러한 것을 바라고 있다면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고, 걸려 넘어지는 우리를 믿고 주님께서 계속 도와주셔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오장육부 만드시고, 우리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세어 두시며, 우리 어미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주님께 우리를 맡겨 드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노력하여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노력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신앙입니다. 주님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니 신앙의 길은 그리 쉬운 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