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연중 제21주일(08.25)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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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8-25 15:36 조회753회본문
* 연중 제21주일 나해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예수님은 오늘 군중에게 당신 말씀이 '귀에 거슬리느냐'고 물으시고, 제자들에게는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못마땅해하는 것을 알고 하신 말씀입니다. '충고의 말은 귀에 거슬린다(忠言逆耳).'라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의 말씀은 맞는 말씀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아니 실천하고 싶지 않은 말씀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마저 내밀 수 있겠습니까? 겉옷을 주었는데 속옷까지 줄 수는 없지요. 아흔아홉 마리가 잘 있으니 한 마리 정도는 잃어버려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부자들이 잘되어야 가난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게 되는 건데,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돌보라는 말씀인지요. 죄인들이나 세리 같이 못된 사람들은 사회불안 요소 아니겠습니까?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현장에서 처형해야 그런 범죄가 예방되는 것이지요.
식민지 상황에서 예수님 같은 사람이 나서서 힘을 모아주면 좋겠는데 왜 뒤로 물러서시는지. 힘을 모아서 독립투쟁을 해야 하는데, 하늘의 새들이나, 들의 꽃들이나 눈여겨 보라 하시고. 높은 자리에 앉아 폼 좀 잡고 싶은데, 낮은 자리로 내려 앉으라 무안(無顔)이나 주시고. 어떻게 번 재산인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어야 당신 제자가 된다 하시니.
여하튼 예수님 말씀과 행동은 현실성이나 경제성이 영 없어 보입니다.
악착같이 이겨야지 무시당하지 않는데 왜 져주라 하시는지. 십자가는 멀찍이 피해야지 왜 거기 올라가 죽어라 하시는지. 성전 마당의 가난한 상인들 좌판은 왜 둘러엎으시는지. 성전 마당에서 바자도 하고 모금도 해야 교회가 유지되고, 교우들에게 냉커피라도 나누어주는데 왜 기도만 하라고 호통치시는지. 당신을 죽이러 온 병사는 물리쳐야지 잘린 귀는 왜 고쳐주시는지. 당신을 저주하고 놀리고 침 뱉는 못된 군인들을 위해 변호까지 하시다니.
하여튼 우리 예수님은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많이도 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양심적으로 사는 것보다 무난하게 사는 것이 더 편합니다. 힘든 일은 피하고 싶고, 복잡한 것도 싫습니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덮고 넘어간 것들이 다 들고 일어납니다. 힘이 드는 일은 힘을 들여서 해야 하고, 세상이 그리 단순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우리 양심은 속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이 초대하시는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세상 가치와 다른 가치, 즉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져주어야 사람을 잃지 않고, 내가 낮아져야 모두 평화로워지고, 손해를 보아야 보물을 얻을 수 있고, 가난과 슬픔과 고통 속의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하느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일이고, 십자가에 바보처럼 올라가야 화해가 성사되고, 내가 죽는 사랑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겸손해지고 온유해지고 급기야 내가 사라져야 하느님의 나라가 열린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