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사순 제5주일(03.17)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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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3-17 16:05 조회1,867회본문
* 사순 제 5주일 나해
“조용히 떨어져 죽는 밀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지난 시절, 부정(不義)한 사회에 정의(正義)를 세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투쟁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사회는 불안정하기만 합니다. 과연 정의사회는 실현되기 힘든 이상사회(理想社會)일까요? 그런데 우리가 정의를 너무 어렵고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의는 쉽게 말해서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과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의는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정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정의를 세우자고 큰소리로 외친다고 정의가 세워지진 않습니다. 점잖고 감동적인 공익광고가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못합니다. 힘으로 불의가 꺾어집니까? 불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또다시 고개를 쳐들곤 합니다. 우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복수와 폭력도 많이 보았습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새로운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었고, 그들의 시끄러운 선전을 들어야 했으며, 때로는 동참을 강요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의가 이 땅에 서지는 못하였습니다.
정의는 조용히 이룩되어야 합니다. 시끄러운 정의는 일을 그르칩니다. 묵묵히 정의를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평화를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피를 부르지 않고 용서하는 정의, 겸손히 자신을 볼 줄 알고, 자신의 할 바를 묵묵히 실천하는 정의, 이런 정의만이 이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우리의 처지를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남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스스로는 자기 새끼손가락도 부러뜨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세상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그 시작은 내가 변화되는 것이고, 그 마지막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죽어 썩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한 알로 남기를 고집하는 밀알들을 용서하고, 새 밀알들을 위해 나를 떨어뜨리고, 썩어서 영양분을 공급하며, 조용히 기다리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희생, 그리고 기다림’ 바로 이것이 새 세상을 만듭니다.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어렵게 그 일을 해내셨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에,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며 그 고난의 잔을 피하고 싶으셨지만, 결국은 감내(堪耐)하여 새 하늘 새 땅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았는가.
베드로의 배신을 내다보신 예수님의 외로움을
겟세마니 찬 땅에 이마를 대고 피땀 흘리신 예수님의 괴로움을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린 제자들을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외로움을.
형틀 짊어지고 세 번 쓰러지고
쓸개 탄 포도주에 고개를 돌리신
예수님의 괴로움을.
생각해 보았는가.
두 손에 구멍 나고, 두 발에 구멍 나고,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소리치신
예수님의 아픔을.
정말, 사람이 하느님을 죽였구나.
생각해 보았는가.
사람이 하느님을 죽이고도 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죄의 사함을 받은 이 크나큰 기적을.
아아, 생각해 보았는가.
쌓이고 쌓인 우리의 죄 만큼 괴로워하신
예수님의 수난을.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한 분의 죽음으로 맺어진 많은 열매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죽음으로써 더더욱 많은 열매를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