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나해 연중 제6주일(02.11) 고찬근 루카 신부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4-02-11 15:41 조회2,276회본문
* 연중 제 6주일 나해
“마음의 이동”
병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정하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병에 걸리면 정말 서러운 것이, 건강할 때는 자주 어울려 주던 사람들이 점차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염성이 있는 병에 걸리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은 사회에서 격리당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의술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랬었겠지만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에이즈라는 병이 그것입니다. 에이즈라는 병은 전염이 잘되는 병도 아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병도 아니랍니다. 주위 사람들이 이해해주고 도와주면 얼마든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병입니다. 그러나 그 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여, 현대에도 에이즈 환자들은 아주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족에게서조차 버림받아 떠돌던 나병환자와 마주치십니다.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스스로 외치면서 멀찍이 피해 지나가야 할 그 사람이, 어쩐 일인지 예수님을 뵙고는 그분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치유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물리치지 않고 고쳐주십니다. 그것도 그냥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피고름이 나는 그의 몸에 손을 대시며 정성껏 고쳐주십니다.
오늘 이 기적의 원천은 예수님의 가엾어하시는 그 마음이었습니다. ‘가엾어하는 마음’은 큰 기적도 이루고,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도 만들어주는 아주 소중한 마음입니다. 가엾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려면, 늘 다른 사람의 어려운 상황과 아픈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 나도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지금의 내 처지에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 즉 마음의 이동입니다. 늘 자기 안에만 머무르려는 마음이, 상처로 아파하는 타인의 마음속으로 넘어 들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인간의 아픈 마음을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갖은 질병에 걸려 서러운 마음도, 미움과 시기, 질투, 오해로 상처투성이가 된 그 마음도, 죄를 짓고 어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해 얼룩진 마음들도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가엾어하는 마음이 부족한 우리 때문에 더욱 서글픈 그 마음들을 예수님은 오늘도 아파하고 계십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하던 어떤 시인의 고운 마음이 마냥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