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해 연중 제24주일(09.12)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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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9-12 11:47 조회5,878회본문
연중 제24주일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를 향하여 가는 도중 길에서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의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오늘 복음의 주제이며 우리 신앙의 근본을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배경은 예수님이 카이사리아 필리피를 향하면서 하셨다는 것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카이사리아 필리피가 어떤 배경을 가진 도시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에 총독부를 만들고 총독을 파견하여 점령지를 지배 하였습니다. 총독부는 예루살렘 북쪽 지중해 연안에 로마식으로 새롭게 건설한 도시 카이사리아에 있었는데, 카이사리아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만든 신도시였습니다. 총독은 대부분의 시간을 카이사리아에서 지내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업무를 보았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총독의 이름은 사도 신경에도 등장하는 본시오 빌라도였습니다.
반면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이스라엘의 왕 헤로데의 아들 필리피가 카이사리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롭게 만든 도시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의 왕의 아들로서 필리피는 새롭게 만든 도시를 로마 제국의 왕의 이름인 카이사리아와 자신의 이름인 필리피를 붙여 카이사리아 필리피라고 명명했습니다. 로마 제국에 잘 보이고 싶기도 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자 하는 속셈이 드러나는 이름입니다.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신도시답게 로마의 문화, 당시 지중해에 유행한 헬레니즘 문화, 그리고 토착민인 유대인의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였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이제 막 시작된 그리스도교는 토착민인 유대인들의 공동체를 넘어서서 다문화 사회의 사람과 문화에 맞닥트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징적인 배경이 카이사리아 필리피라는 도시에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예수님의 질문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다문화 속에서 다양한 고백이 나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로마, 헬레니즘, 이스라엘의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예수님의 등장은 사람마다, 도시마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을 로마 문화의 사람들은 점령지의 반란 지도자로, 헬레니즘 문화의 사람들은 뛰어난 학식을 지닌 스승으로, 유대 문화의 사람들은 과거 구약성경에 등장했던 예언자 중의 하나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고, 예수님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반란의 지도자를 처형하는 데 눈 감았고, 헬레니즘의 이방인들은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듣는 것에 만족해 했으며, 동족인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모독하며 예언자 행세를 하는 예수를 죽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렇게 다문화 속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예수님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 다문화 사회 속에서도 예수님을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예수님은 칭찬하십니다. 문화가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은 변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미래를 살아가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언급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본의 문화와 사회는 예수님 시대의 상황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소수인 반면 신도, 불교가 우세를 보이고 최첨단 과학과 최신 유행이 세계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진행되는가 하면 옛날의 전통과 문화가 고스란히 잘 보존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 일본의 문화와 사회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크리스챤의 정체성을 시험해 봅니다. 크리스챤으로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적인 신앙고백으로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우리가 다양한 문화 속에서 어떤 신앙 고백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고방식, 행동방식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 만병을 치료하는 의사, 위대한 스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갈수록 난제가 쌓여가는 현대 상황 속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구원자의 발자취는 더 선명해 보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