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해 부활 제3주일(04.18)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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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04-18 15:43 조회6,905회본문
부활 제3주일
하느님께서도 들어주실 수 없는 기도가 있는데, 그 기도는 다음과 같답니다. 과음, 과식하면서 위를 보호해 달라는 기도. 과로하면서 건강하게 해 달라는 기도. 과속하면서 안전하게 해 달라는 기도. 과소비하면서 부자되게 해 달라는 기도. 이 부활 시기에 우리도 부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부활은 실로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인간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한편으로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에게 죽은 아들을 살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 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부활은 늘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일은 아닙니다. 사람이 죽었다 깨어난 이야기는 좀처럼 믿기지가 않고, 더군다나 하느님의 아드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이야기로 비쳐집니다. 신앙으로 부활을 믿기는 하겠는데, 그 일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아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우리의 느낌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전하는 복음서 저자들은 특이하고도 독특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인류 역사상 있었던 여러 신화와 전설 속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하고도 웅장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어떻게 보면 너무나 소극적이고 디테일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말하자면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괴력을 발휘하여 무거운 돌을 치우고 무덤을 나왔는지,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구름을 타고 천상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엄위한지, 흰 옷에 둘러싸인 부활한 예수님이 얼마나 눈부시게 찬란한 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대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빈 무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상처를 보여주신 일,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 먹고 마신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들은 마치 바로 옆에서 지켜 본 것처럼 꼼꼼하고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복음서 저자들은 이게 부활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참모습이라고 당당하게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증언합니다. 네 가지 복음서 중에 적어도 하나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해 묘사할 만도 한데 네 복음서 모두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소박한 일상 속에 등장한 예수님의 모습으로 부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서 저자들이 부활에 대한 체험을 이런 방식으로 증언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도 복음서 저자들은 우리가 부활을 늘 일상에서 찾고, 가까운 주위에서 느끼고, 삶 속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살아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부활의 영광스러운 면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부활은 저 세상 이야기가 되어 버릴 수 있고, 부활의 신비로운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부활은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복음서를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또 현재의 우리는 부활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대신 복음서 저자들이 전해주는 것을 읽고 부활을 간접 경험한 후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 점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생하게 온 몸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지만 복음서를 통해 부활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부활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의 결론 끝에 나온 복음서는 “일상의 삶 속에서 부활을 느끼는 것”에 대해 강조합니다. 부활을 경험하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위에서 늘 일어나는 일상 속에서 부활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상의 일이라면 사도들처럼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상 속에서 희망과 용기와 기쁨을 되찾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삶 속에서, 일상에서, 주위에서 부활 체험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는 일상의 일들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일들입니다. 절망에 쌓인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인생의 고뇌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주고,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기뻐하는 사람의 기쁨에 동참해 주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해 주고, 외로운 사람 곁에 함께 있어 주는 일들은 부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시작하고, 용기를 내고, 기쁨을 되찾고, 온기를 느끼며,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일이 부활입니다. 그것이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 부활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그런 가운데 부활은 현실이 되고 우리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게 부활은 늘 우리 곁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