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11.02)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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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11-04 09:29 조회5,436회본문
* 위령의 날
세익스피어는 어떤 미인(美人)도 세월이 휘두르는 낫을 피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죽음이란 것이 갑자기 찾아오는, 순서를 모르는 것이라고, 마치 평화로이 헤엄치는 오리를 숨어서 무작위로 겨냥하여 발사하는 포수의 총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서양의 어떤 신전의 기둥에는 이런 시도 쓰여져 있답니다.
‘나는 왔구나, 온 곳도 모르면서,
나는 있구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 그 때도 모르면서,
나는 떠나리라, 갈 곳도 모르면서.’
요즘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떨어진 나뭇잎을 보면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뭇잎은 이렇게 미련 없이 떨어지는구나. 그리고 떨어진 나뭇잎이 가지에 붙어있는 나뭇잎보다 더 많구나. 그렇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이 훨씬 더 많겠구나. 저 세상이 여기보다 더 큰 세상이겠다.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별은 슬프지 아니한가? 이별이 슬프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말을 다하고 남김없이 사랑한다면 여한 없이 떠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사랑을 다하고 떠날 때 부활과 영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인, 즉 믿는 사람들입니다. 죽음보다 더 강한 믿음과, 죽음보다 더 강한 희망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사랑에 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 죽음을 친구처럼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위령은 먼저 돌아가신 분들을 위로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들을 위로해드리는 길은 그분들 보시기에 좋게 사랑하며 사는 것, 그분들이 이승에 남긴 아쉬운 몫까지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망하던 바로 그 내일이다’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