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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다해 연중 제7주일(02.20)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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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2-20 15:35 조회5,2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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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옛날에 왕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 온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신하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왕의 노여움을 사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왕은 안타까웠지만 그동안 신하가 자신을 위해 노력한 것을 감안하여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기로 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큰 잘못을 하여 사형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간의 정을 생각하여 너에게 자비를 베풀겠다. 어떤 방법으로 사형을 당할 건지 네가 선택하라.” 그러자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냥 늙어서 죽고 싶습니다.” 그래서 왕은 자기가 한 약속이 있어서 그렇게 늙어 죽도록 자비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루카 복음의 자비에 관한 말씀을 듣고 찾은 자비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의 자비에 관한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 비해 뒤지지 않을 만큼 완벽합니다만 그래도 자비하면 떠오르는 종교가 불교이기에 오늘은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불교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無緣大慈 무연대자 同體大悲 동체대비” “無緣 인연이 없는 누구라도 同體 같은 몸이라고 여기고 자비를 베풀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大慈大悲입니다. 불교를 대표하는 자비에 대한 가르침이 대자대비입니다. 불교에서는 나와 인연이 있든 없든 모든 중생을 한 몸으로 생각하고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불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꼭 내 가족이라서 혹은 나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서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 차별없이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 불교의 자비입니다.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자들의 깊은 뜻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의 가르침에 영감을 받아 우리 가톨릭의 자비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게 묵상하고 오늘 예수님의 말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삶 속에서 더 잘 실천할 수 있는지에 성찰해 보고 싶은 차원에서 오늘의 강론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좀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풍성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慈悲라는 漢字에서 는 사랑 자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실타래 자() 밑에 마음 심()이 결합한 모습으로 실타래처럼 무성한 마음, 풍성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는 일반적인 사랑이 아닌 만인에게 베푸는 인정이나 자비를 뜻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배우고 싶은 것은 풍성한 마음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고 말씀하신 다음 너희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학대하고, 뺨을 때리고, 겉옷을 뺏아가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라고 말씀 하십니다. 보통의 인간의 마음으로는 가질 수 없는 태도입니다. 왠만해서 마음이 넓고 너그럽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풍성하고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풍성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불가능한 자비를 가능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자비가 남에게로 향했으면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불교의 자비는 同體 누구라도 한 몸이라고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고 배웠습니다. 오늘 예수님도 같은 맥락에서 말씀 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우리의 자비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 타인을 향한 실천이 될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자비는 나에게 베풀라고 있는 게 아니라 남에게 베풀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는 나랑 동체인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 나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 가톨릭이 말하는 자비의 결정적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으면 합니다.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물론 우리가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비의 원천이신 하느님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그저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것, 종교적 의무로 실천해야 하는 것, 그래서 그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누구라도 형제, 자매, 친구가 되고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배운 사랑과 자비를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본받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부처님으로부터 자비에 대한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풍성한 마음으로 남을 향하여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는 크리스챤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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