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해 연중 제31주일(10.31) 신성길 니콜라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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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1-10-31 15:33 조회5,648회본문
연중 제31주일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오늘은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 날이 되면 어김없이 기억나는 우리나라 가요가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리고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모두가 저물어 가는 시월이 너무 아쉬워 아름다운 시와 노래로 그 아쉬움을 달래는 듯합니다. 아무튼 시월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흘려 보내기가 너무 아쉽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고 강론을 준비하며 저는 저물어가는 아름다운 시월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그 말씀이 너무 좋아서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 슬픈 말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고, 누구나 다 실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 가톨릭 교회는 이천년 동안 쉼 없이 계속해서 사랑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렇게 이 말씀은 우리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말씀이 되었고 이 사랑 실천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전쟁과 테러가 세상을 공포에 떨게하고, 전염병과 질병이 인류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인간과 세상을 지켜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바로 사랑,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사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아름다운 말씀을 들은 오늘, 저물어 가는 멋진 시월의 마지막 날에 제 가슴이 따뜻해지고 충만함으로 가득 찼으면 좋으련만 저의 현실을 생각하면 슬프고 아쉽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신부요 수도자로서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더 잘 실천하고 따라야 하는데 제 현실이 그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슬픈 현실을 여러분에게 고백하자면 저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여기 일본 분들도 계신데 정말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게 저의 솔직한 마음 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에 오면서부터 이런 불편한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 이런저런 책을 읽고 공부하며, 머리와 마음 속에 가시지 않는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이렇게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아직 일본에 대해 잘 모르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면이 있을 수 있으니 속단하지 말자.’ 그런 생각으로 불편한 마음들을 다독여 왔습니다. 마치 그런 저의 마음은 원죄에 물들어있는 마음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인생처럼, 일본에서 살아야 할 숙명을 지닌 사람이 느껴야 할 의무처럼 마음 한 구석이 늘 답답하고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온 지 5년이 지나고 이 자리에서 강론을 하고 있는 지금에도 그 불편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런 저에게 예수님은 오늘의 복음 말씀을 통해 피할 수 없는 돌직구를 날리십니다.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느냐?” 그 돌직구는 거대한 바위가 되어 저를 때립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한 복음 말씀이 등장할 때 마다 저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이런 저의 개인적인 고백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고 고민하다 결국에는 이렇게 털어 놓습니다. 이게 다 시월의 아름다운 마지막 날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강론을 하게 된 우연의 일치라고 탓을 돌리겠습니다.
그만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라 사랑하기가 쉬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웃은 더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여러분 중에도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대상들이 하나씩은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저만 그런게 아니라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라 그리고 엄청나게 의미심장한 말씀이라 아름다우면서도 슬픕니다. 알면서도 하지 못하니 어렵고,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어서 괴롭습니다. ‘막연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더 공부해 보면 좋은걸 찾을 수 있겠지’라고 위로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신가 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삶의 영역에까지 도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인간 본질의 문제까지도 숙고하며 투쟁해야 우리는 삶의 완성을 이루어 나갈 수 있나 봅니다. 그래서 위대한 예언자들이 그 분의 말씀은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다고 말씀하신 듯합니다. 이천년 전에 하신 예수님 말씀의 위력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저 제게 주어진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그날까지 잘 견뎌내 보겠다는 말만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이 더 없이 아름답고도 슬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