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02.01)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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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2-02 09:41 조회5,123회본문
* 설 명절 (루카 12,35-40)
“잘 쉬는 명절”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신랑감은 잘 생기고 돈 잘 버는 사람이랍니다. 그리고 돈 잘 버는 사람은 못 생겨도 용서를 받는답니다. 그러나 못 생긴 것은 용서가 되어도 돈 못 버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한답니다. 오늘날 모든 가치의 중심에 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그 돈을 위해 쉬지도 못하고 힘들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기다렸던 명절을 만나게 되면, 그 명절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못하고, 평소 너무나 바쁘고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한풀이가 되고 맙니다. 먹고, 마시고, 취하고, 시끄럽게 놀고.
평소에 잘 살았어야 명절도 잘 보낼 수 있는 것인데, 평소에 너무나 바쁘게 돈만을 위해서 살았다면, 명절도 피곤과 상처와 허탈감만 남는 명절이 되기 쉽습니다. 잘 노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잘 놀아야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참교육이 흔들려서 그런지, 참 정치도 없고, 참 종교도 없어져 가고, 참 놀이도 없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명절이란 잘 놀고, 잘 쉬어야 하는 날입니다. 잘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친교와 정을 나누며, 잘 쉬면서 인생을 생각하고, 하느님을 생각하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하는 날이 명절입니다.
교우 여러분, 설 명절이면 늘 듣게 되는 오늘 복음 말씀은,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라는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좀 들어가자 주위에 존경하고 사랑하던 어르신들을 한 분씩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손을 꼭 잡아 주셨던 그분들의 손길이 아직 느껴지고, 지긋이 바라보시던 그분들의 눈동자가 제 눈 속에 잔상으로 아직 남아 있건만, 그분들은 한 줌 재가 되어 강으로, 산으로, 하늘로 날아들 가십니다. 그래도 어르신들께서 잘 준비된 죽음을 맞으시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시는 마지막을 보게 되면 제 마음도 평화로워집니다. 어르신들은 이 세상이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 확실히 가르쳐주십니다. 그분들은 세상을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알고 떠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남들이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면,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과, 이 세상 모든 것과 이 세상 모든 일이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참 고향이 하느님이시란 것을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사랑의 추억을 만드는 소풍이라는 것도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서 늘 사랑하고 있을 때, 즉 모든 가치의 중심에 사랑을 두고 시간을 경영할 때, 우리는 죽음이라는 부르심이 찾아와도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디 우리들의 명절이란 것이, 시간과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사랑할 수 있는 이웃과 친척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고, 그리고 풍족하지는 않아도 감사할 줄 알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아름답고 넉넉한 마음이 생기는 그런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