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04.10)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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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4-10 16:30 조회4,897회본문
* 주님 수난 성지주일 다해
“오해를 이해로”
멀리서 인간을 내려다보다 너무나 안타까워 스스로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아들.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손짓과, 인간의 눈빛으로 사랑을 가르치러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그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열심히 인간을 가르치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보여주심으로써 물질적인 걱정은 하느님께 맡기고 오직 사랑하기를 가르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위로하시며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들, 창녀들, 세리들과 함께하심으로써 그들을 새 사람으로 만들고, 적대자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용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의무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선행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더 반기시는 제사라는 것도 가르치셨습니다. 한번은 성전 마당의 탁자들을 뒤집어엎으시고, 하느님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하셨습니다. 도무지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도 흘리셨습니다.
고질적인 인간의 아집에 도전하며, 그렇게도 치열하게 사랑을 가르치셨지만 결과에 만족할 수 없으셨던 예수님, 이제 마지막 방법을 택하십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의 길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허영의 요새에 진실의 십자 깃발을 꽂으러 입성하십니다. '호산나!‘라는 환영의 함성이 ’못 박으라!‘는 저주의 함성으로 바뀔 것을 잘 아셨지만, 그 고독을 홀로 견디며 입성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오해를 죽이고, 이해를 살리기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무지를 죽이고 지혜를, 미움을 죽이고 사랑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루카의 수난 복음에는 오해의 그룹과 이해의 그룹, 두 그룹이 드러납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이 사람들은 질투와 욕심에 불타서, 눈앞에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예루살렘 부인들, 이 사람들은 죄 한 점 없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고통에 공감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 유다, 이 사람은 예수님보다 머리가 좋아서, 예수님을 이용하려다 실패하자 절망하고 죽습니다. 이에 비해 제자 베드로, 이 사람은 나약하여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진심으로 통회하고 재기하여, 굳건한 믿음으로 교회를 이끌어갑니다.
다음은 로마 총독 빌라도, 이 사람은 진실을 알면서도 세상과 타협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살릴 수 있었지만 우유부단하여 결국은 그분을 도와주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버려 둡니다. 이에 비해 키레네 사람 시몬, 이 사람은 본의 아니게 예수님의 일에 말려들었지만, 그것을 내치지 않고 가장 힘들 때 예수님께 도움을 드립니다. 또한, 예수님을 조롱하고 창으로 찌른 군인들, 이 사람들은 무지하여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며 책임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비해 백인대장, 이 사람은 자기가 한 일도 알고, 자기 앞에 벌어진 사건의 의미도 꿰뚫어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상 예수님 왼쪽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죄수, 이 사람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파렴치하게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가 살아보려 합니다. 이에 비해 오른쪽에 있던 죄수, 이 사람은 겸손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위로하며 함께 죽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영광을 누립니다.
교우 여러분, 이렇듯 예수님이 돌아가실 당시 예루살렘 안에는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오해하며 자기중심의 삶을 고집했던 그룹, 그런가 하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타인과 함께하며 사랑할 줄 알았던 그룹.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아들을 권력과 승리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왕으로 오해했다가 배척한 그룹,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은 평화의 왕, 겸손한 왕이시고, 당신 백성을 위해서 죽음까지 불사하는 분이심을 이해하고 있었던 그룹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해의 그룹은 며칠 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이해의 그룹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그룹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