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다해 사순 제5주일(04.03)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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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4-03 15:34 조회4,590회본문
* 사순 제 5주일 다해
“죄도 확실, 회개도 확실, 용서도 확실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정이 많아서 그런지 대체로 처벌(處罰)이 모질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같은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개도 대충, 처벌도 대충, 용서도 대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시대 유다인들의 처벌은 가혹할 정도였습니다. 함께 살던 동네 사람들이 죄지은 이웃 사람을 직접 돌로 쳐 죽이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은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위기에 처한 한 여인을 구해주시고, 용서해주시며,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 사건의 경우는 죄도 확실했고, 회개도 확실했고, 용서도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즘 TV 뉴스를 보면 많은 범죄사건이 보도됩니다. 기자들은 붙잡힌 범인에게 짓궂게 마이크를 갖다 댑니다. 그럴 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참 드뭅니다. 살인을 한 사람은 정당방위였다고 하고, 강도는 부자들이 미워서 그랬다고 하고, 사기꾼은 자기보다 세상이 더 나쁘다 하고, 도둑은 배가 고파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들 말대로라면 지금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죄는 하느님의 사랑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파괴되고 오염된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버린 우리는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주위 사람들과 시기 질투하며 냉랭하게 지낸다면, 그 또한 착한 마음을 망가뜨린 죄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죄에서 자유롭기가 참 힘듭니다. 죄는 어쩌면 우리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개란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보통 우리는 남의 죄에 대해서는 완고하고, 단호하고, 매정하지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많고, 관대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가 남의 죄를 단죄할 수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의 죄’를 단죄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사는 게 죄지요.”라는 할머님들의 말씀은 커다란 진리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죄를 짓지 않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른 사람들도 잘 살려고 노력하지만 나처럼 죄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려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그 여인을 살리시고, 동시에 돌을 놓고 돌아서는 그 사람들도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가장 중요한 사실은, 죄를 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죄를 인정함으로써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법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조용하고 간결하고도 확실하게 용서해주셨습니다. 죄가 확실한 사람은 죄를 묻지 않아도 자기 죄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나간 죄를 요란하게 들추어내지 않고, 용서해준다고 공치사를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용서는 아무 조건도 없고 간결할수록 좋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