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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다해 사순 제2주일(03.13)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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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3-13 15:07 조회4,6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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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 2주일 다해

 

 

"흑백 인생"

  

예전에 어떤 모험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여러 개의 성작(성배)을 앞에 놓고, 예수님이 최후만찬 때 실제로 쓰셨던 성작(聖爵)을 골라내야 살아남는 장면인데, 악당들은 앞을 다투어 화려하고 값비싼 성작을 골라 죽게 되지만, 주인공은 나무로 된 소박한 성작을 골라 살아남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점점 더 화려하고 값비싼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여 돈을 법니다. 좀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명품 옷, 명품 가방, 비싼 음식, 고급 여행 등. 네온사인이 현란한 도시의 밤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갈수록 원색에 가까워지는 컬러 TV. 이런 화려함의 홍수 속에 우리는 가끔 지난 시절 흑백 TV 시대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초가집과 보리밥, 타는 저녁놀 피어나는 굴뚝 연기, 어두운 집집마다 하나둘씩 켜지던 30촉 백열등. 모두가 그립습니다.

 

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컬러이지만, 우리 인생의 진실은 여전히 흑백(黑白)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세상이라 해도 결국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인생의 많은 부분이 기다림과 슬픔과 고통의 나날들이니 말입니다. 학생시절 푸른 꿈도, 이십 대 핑크빛 사랑도 시간의 흐름 속에 빛바랜 추억으로 남게 되고, 잿빛 머리 주름진 얼굴에 흙이 그리워지는 시기를 홀연히 맞이하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현란한 색채의 현대 속에서도, 모든 색의 근본인 흑백의 인생을 살 줄 알면 좋겠습니다. 화려한 성공, 명예, 쾌락 같은 것들이 아니라, 정직과 성실, 보이지 않는 희생,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사랑, 이런 것들을 살아야겠습니다. 시끄럽고 미련 많은 죽음을 끝으로 땅속에 묻혀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죽음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가는 그런 인생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어떤 산 위에서 눈부신 모습으로 변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변화 후에 예수님이 해주신 이야기는 수난과 죽음에 관한 것이었고, 사실, 그 산에서 내려오시자마자 본격적인 수난의 길을 가시게 됩니다. 제자 베드로는 눈부신 예수님의 모습에 반해서 그 산에다 집을 짓고 거기서 살자고 했지만, 예수님은 미련 없이 산에서 내려와 당신의 가실 길을 가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한 인간 안에 드러나셨던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그러나 그 영광은 잠시뿐, 고독한 수난과 죽음의 터널을 지난 뒤에야 비로소 부활이라는 영광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모두가 편리함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고독하게 희생과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하는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재료로 부활의 기쁨을 만들어내는 역설의 주인공들입니다. 비천한 몸으로 죽어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새 생명을 얻는 '하늘의 시민들(필리피 3,20)'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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