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다해 연중 제13주일(06.26)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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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6-26 14:54 조회4,338회본문
* 연중 제 13주일 다해
“포기의 기쁨”
예수님은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는 죽음이 기다리는 마지막 땅입니다. 3년 전 공생활을 시작하셨던 예수님, 요셉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목수로 살면서 어머니 마리아를 모셔야 할 입장이었지만 집을 떠나셨습니다. 지혜롭고도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대성전 소속 랍비로 자리 잡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왕으로 자처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손 한번 대고 말씀 한마디로 치유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명의(名醫)의 길을 가실 수도 있었습니다. 친구 라자로와 그 동생 마르타, 마리아와 함께 정을 나누면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거침없이 올라가십니다. 예수님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해주고, 친구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사람들을 용서하고 참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죽는 것이 당신 삶의 진정한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길에 동참하려면, 우리도 단호한 포기와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 첫째는, 안정된 삶에 대한 포기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때 묻은 발에, 땀 냄새나는 몸으로 노숙을 해야 하셨고, 머리 기댈 곳조차 없으셔서 뱃고물을 베고 주무신 적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고파 길가의 밀 이삭을 뜯어먹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으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적인 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정보다 하느님의 일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걱정하여 찾아온 어머니와 친지들을 만나주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라고 매정한 말씀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는 길에서 인사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장례까지도 포기하고 하느님 나라를 전하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마치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죽은 전우를 뒤로하고 전진해야 하는 비장함을 연상케 합니다.
셋째는,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이상, 가족의 따뜻한 사랑, 달콤한 사랑의 추억,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들을 모두 버리고, 오직 앞으로 다가오는 일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하고 말하자, 스승이 제자에게 “너는 아직도 그걸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생각과, 자신이 의롭다는 그 생각마저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자유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 따르려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들의 자유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소유하는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들을 하나둘씩 포기해 나가는 자유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 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사실 그 모든 것들 다 하느님이 주셨던 것들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온 생애, 그 안에서 누리는 우정과 사랑, 기쁨과 행복 그 모두 원래 하느님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브라함이 바쳤던 아들 이사악을 온전하게 되돌려 주신 하느님, 십자가 제물로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신 하느님입니다. 그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는데 아쉬운 것이 무엇이며, 그 하느님을 위해 포기하는데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