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다해 연중 제23주일(09.04) 고찬근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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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혜올리비아 작성일22-09-04 15:51 조회4,525회본문
* 연중 제 23주일 다해
“다함 없는 사랑”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 앞에 서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 형제, 자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신의 목숨이 우리를 붙잡고 서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나의 기쁨과 나의 안정’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도 많고 잃어버릴 것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본전을 챙기며 교묘하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은,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상실의 아픔’ 뒤에 솟아나는 어떤 것이지, 내 것들을 그대로 보존하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사랑의 의무’를 지니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의무는 ‘다함이 없는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의무의 범위 즉,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계속 확장하라고 재촉하십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에 머물러 있는 사랑은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만하면 됐겠지?’ 할 때 예수님은 ‘아니(No)!’라고 하시며, 더 다가가는, 더 퍼져나가는 사랑을 하라고 재촉하십니다. 사랑을 확장하는 그 작업이 바로, 계속 자기를 버려야 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계속적으로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 솟아나는 소유욕과 이기심과 자존심, 온갖 안정에 대한 욕구를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집안 식구처럼 정(情)으로 맺어진 모든 인간관계를 넘어서라고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가족이기에 사랑하고, 정 때문에 용서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예수님 사람이 되는 길이고, 목숨을 얻는 방법이며, 하느님의 상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저 좋은 게 좋고, 큰 소리 안 나게 대충 넘어가고, 목숨을 부지하려 타협하다 보면, 예수님의 일을 하나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요지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뜻에 맞는다면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주지만, 예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칼 같이 따져야 하고, 불도 질러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은 늘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온갖 허례허식과 체면과 인정(人情)을 깨부수는 혁명(革命)의 계속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의심해보라고 우리에게 촉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늘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